메타버스, 두 얼굴의 매혹[패션의 진화/김홍기]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3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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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기 패션 큐레이터
김홍기 패션 큐레이터
패션은 매혹을 창조하고, 그 속으로 사람들을 흡수해온 역사다. 매혹이란 뜻의 단어 ‘얼루어(allure)’는 어원상으로 ‘사냥용 매를 길들이는 기술’이란 뜻을 갖고 있다. 야생 상태의 매를 길들여서 주인을 위해 사냥을 하도록 바꿔 놓을 정도로 강력한 힘이란 뜻이다.

패션은 시대별로 이런 매혹의 힘을 만들며 나아가 패션산업의 개념과 운영 방식을 바꾼다. 최근 메타버스 시스템이 이런 역할을 하고 있다. 인공지능과 가상현실, 전자게임이 결합된 이 세계는 한 벌의 옷을 만들기 위해 인간이 견고하게 결합해 놓았던 모든 가치사슬을 일시에 허물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은 메타버스 플랫폼에 디지털 본사를 세우고, 유통업계의 공룡들도 메타버스 공간에서 상품기획 회의를 연다. 명품 및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들도 속속 메타버스로 뛰어들었다. 패션기업이 메타버스 플랫폼과의 협업을 통해 가상의류를 디자인하고 테마 공간을 만들어 브랜드를 알리는 사례는 그다지 새롭지 않은 풍경이다.

루이비통은 창립자의 이야기를 대체불가토큰(NFT)이 결합된 게임으로 만들었다. 참여자들이 게임을 하면서 숨겨진 NFT를 찾아가도록 설계했다. 이는 게임을 통해 소비자에게 강화된 몰입 경험을 선사하며, 소비자를 특정 브랜드의 서사에 복종하도록 만들고 아비튀스라 부르는 성향의 체계까지 지배하려는 시도다. 버버리와 구찌도 이런 게임 형식을 빌려 소비자들을 더욱 ‘특정한 세계’에 가두려는 시도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최근 유수의 패션 브랜드들이 참여하는 메타버스상의 세계 최초의 패션위크도 열렸다. 사용자들은 참가 브랜드의 패션쇼를 관람하고 아바타와 디지털 의류를 가상화폐로 구입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패션위크는 다가올 유행 경향을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가장 강력한 체계였다. 뉴욕과 파리, 밀라노 등 오랫동안 문화자본을 축적한 도시에서 열리던 패션위크가 이제는 메타버스에서 열리는 것이다.

이는 패션계의 기존 권력이 허물어지고, 탈중심의 시대를 맞고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다. 유행담론이 창조되는 방식이 메타버스 공간의 소비자를 통해 재구성된다는 뜻이다. 특히 MZ세대들이 환호하는 스트리트 패션이 게임과 메타버스를 통해 새로운 팬덤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메타버스에서 자신의 커뮤니티를 만들어내지 못한 브랜드와 개인은 더욱 수동적인 존재로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된다. 메타버스가 소비자를 잘 길들인 ‘매’로 만들 것이란 우려 또한 존재한다. 특정한 플랫폼에 묶인 채 자연스레 브랜드의 광고를 내면화하며 비판 능력을 상실한 ‘성실한’ 소비자로 남게 될 가능성 말이다. 비판적인 눈으로 메타버스의 진화를 관찰하는 태도가 필요한 이유다.

김홍기 패션 큐레이터
#메타버스#두 얼굴의 매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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