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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이기홍 칼럼]더 내주고 더 굽히면 보이는 단일화 해법

입력 2022-02-18 03:00업데이트 2022-02-18 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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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개혁 위해서도 尹-安 연대 절실
다시 어깨 힘 들어간 尹과 국민의힘
겸손과 진중함 회복하고
통 크게 양보하는 자세로 단일화 임해야
이기홍 대기자
김혜경 씨 법인카드 의혹을 과잉의전 논란이라 표현하는 건 적확하지 않다. 과도한 의전, 갑질 차원이 아닌 공금횡령 의혹 사건이다.

이재명 후보는 부인의 법인카드 사용 실태를 몰랐을까. 정말 몰랐다면 시청·도청 화장실에는 ‘부패지옥 청렴천국’ 스티커를 붙였지만 정작 자기 안방 부패에는 후각마비였음을 자인하는 셈이다.

대장동 비리와 무관하다는 해명이 ‘코밑에서 측근과 민간업자들이 천문학적 인허가 비리를 조직적으로 벌이는데도 까맣게 모르고 방치했다’는 치명적 무능을 자인하는 셈인 것과 마찬가지의 딜레마다.

만약 다른 대선 때 이런 사건들이 터졌다면 어떻게 됐을까. 김혜경이라는 이름에 과거 대선 후보 부인들의 이름을 넣고 상상해보라. 대장동을 용산개발로, 이재명을 오세훈으로 바꿔 상상해보라. 선거는 진작 결판났을 것이다.

그런데 2022년 대선은 다르다. 법인카드 파문에도 1, 2위 격차는 좁혀졌다.

이 후보에 대한 지지는 업무능력에 대한 기대치의 비중이 크고 정직성 도덕성에 대한 기대치는 워낙 낮은 탓도 있겠지만, 더 큰 원인은 윤석열 후보가 다시 어깨에 힘이 들어가면서 자책골로 상쇄해준 덕분이다.

적폐청산 발언은 실제 전하고자 했던 콘텐츠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굳이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아도 될 과잉 표현들을 서슴없이 내뱉는 것은 한 달 전 지지율이 20%대로 추락하자 가까스로 회복했던 진중함을 다시 잃어버리는 징후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에 따르면 선거가 다가올수록 ARS 보다는 면접조사의 정확성이 높아진다. 대표적인 면접조사인 갤럽에서 선두 1, 2위간 격차는 거의 없다.

더구나 선거 막바지는 여당 프리미엄이 최대치로 작동한다. 돈풀기는 차치하고라도 전국 통리반장이 9만5000명이고 기초 단체·의회도 여당이 장악하고 있다.

설령 윤 후보가 다소 앞선다 해도 우쭐은커녕 부끄러워하고 죄책감을 느껴야 마땅하다. 문재인 정권 5년간의 숱한 실정과 내로남불, 부정의에 분노한 정권교체 민심이 일관되게 압도적 과반수를 유지하고 여당 후보가 초대형 악재들에 허우적이는데도 윤 후보는 30%대에서 맴돌지 않았나.

얼마나 많은 국민이 실망하고 마음 졸이며 지켜보는지 안다면 반성하고 더 고개 숙여야 한다. 그래야 단일화의 해법도 보인다.

단일화의 공(球)이 넘어온 지금이야말로 윤 후보가 초심으로 돌아갈 때다. 정치에 뛰어들며 밝힌 소명은 정권교체와 새로운 정치 아니었던가.

설령 단일화 없이 이긴다 해도 180석 거대 민주당과 국민의힘 내 기득권 세력의 벽에 부딪혀 새 정치 구현은 난망이다.

게다가 6월 지방선거와 내후년 총선도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이 각각 후보를 내 표가 분열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안철수 후보를 끌어안는 것은 중도보수 지평 확대, 보수 개혁, 성공한 정권의 디딤돌을 놓는 것이다.

안철수 총리 인준을 국회에 요청하면 최근 그를 끌어들이려고 여권이 쏟아낸 칭송의 수사(修辭)들이 자승자박이 돼 민주당도 비토하기 어려울 것이다. 광역선거 공천 등 여러 조합도 있을 수 있는데, 더 중요한 건 자리보다 신뢰다.

윤 후보는 10분 내에 담판으로 끝내겠다고 했는데 성공을 위한 준비작업은 상대에 대한 존중이다. 이준석 대표와 김기현 원내대표가 단일화에 부정적인 것으로 전해지는데 그들이 안철수 진영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지 못하게 제어하고 설득하는 게 정치력이고 리더십이다.

“아쉬우면 들어와라. 그러면 상응한 대접을 해준다”는 태도는 하급의 막돼먹은 정치다. 우리 국민들은 강자가 약자를 무릎 꿇리는 걸 가장 싫어한다.

내각을 나눠 갖는다 해도 후보로선 손해 볼 게 없다. 수십 년 생사고락을 나눠 신세를 갚아야 할 정치적 동지들이 있는 것도 아니잖은가.

손해 보는 건 한자리 노려 몰려든 이들과 당내 기득권자들뿐이다. “우리끼리 다 먹을 수 있다”고, “단일화 안 해야 보수가 긴장해서 열정투표한다”고 귀에 속닥일 때마다 2002년 이회창 측근들이 정몽준-노무현 단일화를 어떻게 폄하하고 “숨은 5%” 운운하다 이회창을 패배로 몰아넣었는지 상기해야 한다.

담판이 성사 안 될 경우 여론조사도 못 받을 이유가 없다. 상식과 이치를 따지면 지지율 4분의 1 수준 후보의 여론조사 단일화 요구는 과도하다. 하지만 이걸 받는 통 큰 자세를 보이면 그 자체가 막대한 플러스 요인이 될 수 있다.

더 큰 집이 굽히고 양보하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다. 안철수에게 굽히는 게 아니라 그를 지지하는 수백만 국민에게 굽히는 것이다. 눈앞의 산술적 손해를 감수하고 다 던진 정치인들이 항상 큰 싸움에서 이겼다.

안 후보도 상식에 입각해 자신이 위치를 봐야 한다.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은 양당구조 타파가 아니다. 만약 3등에 그칠 경우 의미 있는 제3지대 실험으로 인정받기보다는 정권교체 훼방꾼으로 손가락질 받을 것이다. 도덕성 자질 면에서 가장 낫다고 평가해주는 사람이 많다 해도 이를 지지율로 연결시킬 드라마틱한 히스토리와 업적을 아직까지는 충분히 만들어내지 못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대선까지 불과 19일. 윤, 안 앞에는 정권교체와 더불어 새로운 중도보수 시대를 열 기회의 문과 동반몰락의 문이 다 열려 있다. 욕심이나 아집에 사로잡히면 함께 광화문에서 돌팔매를 맞지 결코 어느 한쪽 책임만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이기홍 대기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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