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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수만 년 그물의 역사, 다시 분해되는 그물로[김창일의 갯마을 탐구]〈72〉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입력 2022-01-13 03:00업데이트 2022-01-1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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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박물관 전시실이나 수장고에 보관돼 있는 그물추를 볼 때마다 고대인들은 그물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궁금증이 생기곤 한다. 한반도에서 그물은 신석기부터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2018년 강원 정선군 매둔동굴 퇴적층에서 2만9000년 전 무렵 후기 구석기인들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그물추가 출토되면서 시기가 앞당겨졌다. 구석기부터 줄곧 사용된 그물추는 돌을 갈거나 흙을 빚어 만들었기에 숱하게 남아있지만, 그물망은 나무껍질 등 유기물로 만들었으므로 전하지 않는다.

조선시대에도 칡넝쿨 등을 쪼개 만든 그물을 사용했다. 엉성한 어망으로 물고기를 잡다가 놓치기를 반복하는 것을 본 정약용은 어부들에게 무명이나 명주실로 그물을 만들고, 소나무 끓인 물에 담갔다가 사용해 부식을 방지할 것을 권했다고 한다. 1801년 강진으로 유배되기 전 경상도 장기현(포항시 장기면)에 머물 때 일화다. 정약용의 형인 정약전은 흑산도 바다에 서식하는 해산물을 관찰해 자산어보(1814년)를 저술했다. 유배지에서 동생은 그물 만드는 방법을 전했고, 형은 어류 박물지를 남겼다. 신유박해 때 정약전과 정약용은 나주 밤남정 주막에서 하룻밤을 묵은 후 각자 유배지인 흑산도와 강진으로 떠났고 다시 만나지 못했다. 이런 내력 때문인지 영화 ‘자산어보’를 관람할 때 그물 재현 방식이 궁금해 유심히 화면을 본 기억이 있다.

인류의 그물 이용 역사는 유구하다. 수만 년을 천연소재 어망으로 물고기를 잡았다. 1950년대까지 칡넝쿨을 이용한 갈망(葛網), 대마 껍질로 만든 마망(麻網), 면사 그물망 등을 사용했다. 가죽나무 껍질, 삼, 새끼줄, 칡 줄기 등을 이용해 그물 몸줄과 뜸줄, 발줄, 닻줄 등을 만들었다. 그물 제작은 전적으로 어부들 노동력에 의존했으므로 예삿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조업할 때 쉽게 훼손됐으며 여름철 우기에는 부식되기 일쑤였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갈물을 입혔다. 큰 가마솥에 물을 붓고, 참나무 껍질이나 해당화 뿌리 등을 넣어 끓이면 갈색의 진액이 나온다. 이 액체에 그물을 넣고 다시 끓여서 염색했다. 조기잡이 섬으로 유명했던 연평도 노인들은 1950년대까지 갈물을 우려내던 갈가마가 해변에 즐비했음을 증언했다. 지금은 갈가마라는 상호를 사용하는 음식점만이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할 뿐이다.

갈물은 부식 방지에 효과가 있었으나, 강도는 여전히 약해서 잘 찢어졌다. 그래서 물고기가 너무 많이 잡히기 전에 끌어올리기 위해 밤새 잡히는 양을 점검하는 물상직이라는 선원을 두기도 했다. 1950년대 나일론 재질 그물 도입으로 식물로 만든 그물과 갈가마, 물상직 선원은 사라졌다.

수만 년을 사용하던 천연소재 그물은 부식돼 전해지지 않는다. 반면 합성섬유 그물을 사용한 것은 불과 60여 년에 불과하지만 바닷속에 쌓여가고 있다. 해양오염은 말할 것도 없고, 유실된 그물에 물고기가 걸려 죽고, 그 사체를 먹으려 모여든 또 다른 물고기가 걸려 죽는 피해가 심각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자연 소멸되는 생분해 그물이 차츰 보급되고 있다. 언젠가는 고성능 생분해 그물로 완전히 대체돼 우리 시대에 사용한 그물을 후손들이 볼 수 없기를. 식물재료로 만든 그물을 수만 년 사용했으나 지금 우리가 볼 수 없는 것처럼.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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