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걸음질 전기車 정책, 이대로면 추월당한다[광화문에서/이상훈]

이상훈 산업1부 차장 입력 2021-10-28 03:00수정 2021-10-28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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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산업1부 차장
“한국 자동차 회사가 이런 주문을 제안받았다면 굉장히 난처했을 겁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최근 미국 전기자동차 업체 테슬라의 ‘10만 대 주문’ 뉴스를 보고 기자에게 이런 말을 건넸다. 차를 많이 팔아야 돈을 버는 자동차 회사가 주문을 겁낼 것이라는 말이 의아하지만 올 들어서 전용 전기차 생산라인이 돌아가기 시작한 한국에서는 틀린 말이 아니다.

세계적인 렌터카 업체인 미국 허츠가 테슬라의 보급형 세단 모델3 10만 대를 구매할 것이라는 발표는 ‘전기차 많이들 사는구나’ 정도로 다룰 소식이 아니다.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를 퇴장시키는 세계 자동차시장의 패러다임 변화를 보여준다.

대량 주문은 자동차시장에서 개인 구매와는 차원이 다른 ‘규모의 경제’를 단번에 이뤄낸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가 여러 논란에도 글로벌 빅3 자동차 메이커 자리를 놓치지 않는 힘이 미국 정부와 렌터카 업체의 대량 구매에서 나온다. 10만 대 주문 소식에 테슬라가 세계 자동차 기업 중 처음으로 시가총액 1조 달러 클럽에 가입하고 주가가 1000달러를 넘어서며 ‘천슬라’ 고지에 올라선 것은 자동차 산업 구조 개편의 상징적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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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가 미래 대세인지를 둘러싼 논쟁은 끝났다. ‘기선을 제압당하면 설 자리는 없다’는 절박감으로 전기차 주도권을 잡기 위한 쟁탈전이 본격화된 지 오래다. 미국은 자국 현지 공장에서 생산한 전기차에 기존 보조금 7500달러(약 875만 원)에 4500달러를 추가로 얹어주는 법안을 추진 중이다. 한국 독일 등 경쟁국의 반발과 세계무역기구(WTO) 보조금 협정 위반이라는 우려 섞인 지적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일본은 지난해 말 전기차 보급 촉진을 위해 보조금을 40만 엔(약 409만 원)에서 최대 80만 엔으로 2배로 올렸다.

한국은 되레 뒷걸음질치고 있다. 2018년 대당 1900만 원을 정점으로 올해는 지역에 따라 최대 1500만 원 수준으로 줄었다. 내년에는 올해보다 400만 원가량 더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전기차 보조금은 4분기(10∼12월) 들어 상당수 지방자치단체에서 이미 소진됐다. 올해 정부 보조금 예산 1조2000억 원으로는 소비자들의 전기차 수요를 채우기에 부족했다.

현대자동차가 내년까지 30만 대의 전용 전기차 생산능력을 갖추는 등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 생산라인 확대에 나서고 있지만, 차를 만들 수 있는데도 보조금이 부족해 소비자들이 전기차를 못 사는 일이 반복될 수 있다. 혹여나 대량 주문이 들어오면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 달라’고 읍소해야 하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올해 1∼9월 전기차에서 한국은 미국에 5억1000만 달러 적자를 냈다. 2011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한국인들도 포드 크라이슬러를 사야 한다”며 흑자를 줄이라고 압박한 지 10년 만에 이렇게 됐다. 경쟁국에선 업체들이 막대한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 사생결단의 전기차 경쟁을 벌이고 있다. 지금이 승부처다.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

이상훈 산업1부 차장 sanghun@donga.com



#뒷걸음질#전기차#추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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