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김종석]열 살 운동, 백 살 간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9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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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여성 참가시킨 정구대회 정신
청소년 체육 장려는 국가 백년대계

김종석 스포츠부장
김종석 스포츠부장
제99회 동아일보기 전국소프트테니스(정구)대회가 지난 주말 경북 문경에서 개막했다. 이 대회는 국내 단일 종목 대회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지녔다. 1923년 제1회 전국여자연식정구대회로 시작됐다. 11개 여학교가 참가했다. 정구의 발상지 일본에서조차 가장 오랜 정구대회는 올해로 76회째를 맞으니 이 대회의 연륜과 계승의지를 가늠할 수 있다.

1920년대만 하더라도 여성의 대외활동이 쉽지 않았다. 동아일보는 첫 대회를 앞두고 ‘항상 방 안에 들어 있는 시간이 많아 허약한 조선 여자의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 여자의 운동을 권장함이 긴급하다’는 기사를 게재했다.

서울 정동 제일고녀(경기여고 전신) 운동장에서 개최된 경기에는 경성 인구(25만 명)의 10%가 넘는 3만 명의 관중이 몰렸다. 남성 입장이 허용되지 않아 나무 위에 올라가 댕기머리에 흰색 치마를 입은 선수들의 플레이를 지켜보기도 했다. 대한민국 체육 100년사는 이를 두고 ‘여학생들이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경기를 즐길 수 있도록 한 세심한 배려가 돋보인다’고 기록했다. 각계에서 상품이 답지하면서 부상도 푸짐했다. 비단우산 6개, 여자용 필통 20개, 개벽사 어린이(잡지) 20부, 천일영신환(소화제) 10포….

남성 관중 입장은 1927년부터 허용됐다. 2006년 남자 선수에게도 대회 출전의 문호를 개방해 명실상부한 정구 최고의 무대가 됐다. 초·중·고·대학·실업에 걸친 각 부문 경기를 치러 유망주를 발굴해 대표 선수로 키워 냈다. 한국 정구는 역대 아시아경기에서 나온 41개 금메달 가운데 25개(남자 11개, 여자 10개, 혼성 4개)를 휩쓸었다. 100세 시대를 맞아 80대를 넘어 90대도 즐기는 생활 스포츠로 거듭나고 있다.

규방에 머물던 소녀들에게 운동을 통한 꿈과 희망을 키워준 한 세기 전 모습은 요즘도 절실하다. 국가의 미래인 청소년의 체육활동이 갈수록 위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0 국민생활체육조사에 따르면 10대의 35.8%는 규칙적인 체육활동에 전혀 참여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 70세 이상(36.9%)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특히 10대 여성은 이 비율이 49%로 남녀를 통틀어 모든 연령대에서 가장 높았다.

전문가들은 체육활동 활성화를 위한 물리적 환경을 조성하고 어려서부터 스포츠를 통한 자기 극복과 성공의 경험을 지속적으로 제공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일찍부터 다양한 운동을 접해야 평생 스포츠도 가능하다. 스포츠 습관화 전략에 따라 영국에서는 3∼7세 아동에게 스포츠 재정의 25%를 투입한다. 2015년 ‘스포팅 퓨처(Sporting Future)’라는 정책을 발표해 모든 청소년이 매일 하루 1시간 체육 활동을 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를 위해 교육부, 문화미디어체육부, 보건사회복지부 등 관련 부처가 공조하고 있다. 정인선 대한정구협회 회장은 의사로는 보기 드물게 체육단체를 이끌고 있다. 중학교 때 라켓과 맺은 인연을 50년 가까이 잊지 못해서다.

지난달 국무회의에서 공포된 스포츠기본법이 내년 2월 시행에 들어간다. 여기에는 모든 국민이 차별 없이 자유롭게 스포츠에 참여하고 누릴 권리를 가진다고 돼 있다. 27개 조항에 걸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해야 할’ 일이 A4용지 네 장 분량으로 빼곡히 담겨 있다. 이젠 현실적인 실천 방안에 집중해야 할 때다. 무엇보다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그 옛날 선각자들 볼 낯도 생길 것 같다.

김종석 스포츠부장 kjs0123@donga.com
#동아일보기 전국소프트테니스대회#정구대회 정신#국가 백년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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