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 판매’ 서점의 한계[2030세상/박찬용]

박찬용 칼럼니스트·‘디렉토리’ 부편집장 입력 2021-06-22 03:00수정 2021-06-2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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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용 칼럼니스트·‘디렉토리’ 부편집장
몇 년 전 ‘취향을 파는 서점’ 같은 말이 유행했다. 서점에서 그냥 책만 파는 게 아니라 일종의 라이프스타일 큐레이션을 해준다는 이야기였다. 라이프스타일은 뭘까? 큐레이션은? 답을 내리거나 범위를 정하기 모호한 분야다. 실제로 가 보면 책의 분류를 조금 달리 해 두거나 책의 표지가 잘 보이게 전시해 둔 정도였다.

그런 서점들이 문을 닫는 중이다. 지난달 31일 서울 한남동의 스틸북스가 문을 닫았다. 비슷한 시기에 아크앤북 을지로점도 문을 닫았다. 2018년 도산공원에 새로 생긴 퀸마마마켓에도 ‘어른들을 위한 서점’을 내세운 파크라는 서점이 있었다. 역시 문을 닫았다. 세 서점은 모두 업력 만 4년을 넘기지 못했다.

시내에 어떤 공간이 새로 문을 연다. 신장개업하는 공간이 서점으로 관심을 끈다. ‘단순 상업시설이 아니라 이런저런 취향을 만나볼 수 있다’고 홍보한다. 홍보가 된 만큼 사람들이 온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방문과 매출에 한계가 생긴다. ‘잠시 쉬어간다’는 말과 함께 폐점한다. 이쯤 되면 폐점해도 상관없어 보인다. 해당 건물이나 상업 시설을 알리는 데 성공했으니까. 책과 서점이 신장개업의 들러리가 된 셈이다.

취향 서점 같은 이야기는 일본 쓰타야 서점 사례에서 온 것 같다. 쓰타야 이야기에서는 간과되는 것이 있다. 하나, 쓰타야가 멋있는 서점을 낸 동네는 세계적 소비 규모를 가진 일본의 수도인 도쿄 중에서도 생활 수준이 높은 곳이다. 둘, 일본에는 쓰타야 같은 서점도 있고 다른 일반 서점도 있다. 예를 들어 일본에는 야구 전문지가 많으나 쓰타야에는 야구 전문지가 하나도 없다. 그런 잡지를 보려면 대형 잡지 코너를 갖춘 시내의 대형 서점을 가야 한다. 셋, 일본의 소비자층은 세계적으로도 소비 수준과 충성도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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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은 수요도 공급도 아닌 수요와 공급의 상호작용이 끌고 간다. 한국의 젊은 서적 소비자들은 특정한 공간에 대한 충성도가 높지 않은 듯하다. 요구하는 기준은 높으나 지불 의지가 높은 것 같지는 않다. 그 결과 이런 일이 생긴다. 독립 서점에 가서 평소에는 못 보던 책을 찾는다. 그 자리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인터넷으로 책을 주문한다. 다음 날쯤 집에 책이 도착해 있다. 책을 읽는 사람들 모임에서 실제로 들은 말이다.

책을 좋아하는 개인인 내 입장에서 아쉬울 때가 있긴 하다. 어쩔 수 없다. 시장의 흐름에 따라 사업의 모양이 결정된다. 그래서 요즘의 취향 서점들은 책 대신 다른 걸 판다. 쿠키도 팔고 굿즈도 팔고 커피도 팔고, 코로나19 전에는 강연 등 사실상의 공연 상품을 팔기도 했다. 한국 시장은 서점업을 요식업, 잡화 유통 판매업, 공연업의 모양으로 빚고 있다.

한국 시장은 다수를 따르면 밋밋해지고 뾰족한 소수를 따르면 수익이 나지 않는다. 취향 업계의 한 분파인 라이프스타일 잡지 업계에서 내가 몸으로 경험한 바로는 그렇다. 그러니 ‘취향이 새로운 시대의 비즈니스다’ 같은 주장은 믿지 않았으면 한다. 이런 말은 젊은 사람과 순진한 사람에게 특히 위험하다. 예쁜 말에 속아 헛된 꿈을 꾸며 삶의 자원을 낭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찬용 칼럼니스트·‘디렉토리’ 부편집장
#취향 판매#서점#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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