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수업만 11개월째”… 무너진 美공교육 1번지 페어팩스 카운티

이정은 워싱턴 특파원 입력 2021-01-14 03:00수정 2021-01-14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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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현장을 가다]지난해 하반기에 낙제 ‘F’학생 급증
사회성 발달 늦어지는 등 2차 피해… 학부모 “교사 노조가 개교 반대” 불만
교육 양극화 가속화는 더 큰 문제
지난해 3월부터 코로나19 확산으로 휴교에 돌입한 미국 버지니아주 페어팩스카운티 한 학교의 교실 모습. 페어팩스 퍼블릭스쿨 웹사이트
이정은 워싱턴 특파원
미국 버지니아주 매클린에 사는 워킹맘 데이나 안톨릭 씨(40)는 최근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 마커스의 방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온라인 수업에 한창 집중하고 있어야 할 시간에 노트북 앞에서 울고 있었다. 마커스는 “그냥 다 하기 싫다. 노트북 앞에 앉아 있는 것이 특히 싫다”며 “과제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마커스는 지난해 3월 중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버지니아 학교들이 전격 휴교에 돌입한 후 현재까지 약 11개월간 단 하루도 학교에 가지 못했다. 100% 온라인 수업만 듣는 날이 이어지자 아이가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안톨릭 씨는“어른도 1년 가까이 재택근무만 계속하는 게 답답하고 힘든데 애들이 오죽하겠느냐”며 “정말 끔찍한 상황”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 학부모 “성적 하락·사회성 발달 부진” 우려

수도 워싱턴과 맞닿은 버지니아는 미 50개 주 중에서도 특히 교육열이 높은 곳으로 꼽힌다. 각국 대사관은 물론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B) 같은 국제기구가 밀집해 고학력 엘리트 부모가 많고, 자녀 교육에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열심인 아시아계 주민의 비율도 높다.

특히 미 공립고교 중 최고 명문으로 꼽히는 토머스제퍼슨 과학고가 있는 페어팩스 카운티는 ‘미 공교육 1번지’로도 불린다. 초중고교 학생이 18만6000명에 이르는 주내 최대 학군이다. 하지만 코로나19로 ‘100% 온라인’ 수업이 장기화하면서 학생과 학부모 모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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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커스와 초등학교 6학년생인 형 카이어스 형제가 인터넷 게임을 하는 시간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학교가 휴교하기 전까지는 인터넷 게임에 전혀 손대지 않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주말에만 게임을 하기로 했던 원칙이 서서히 무너지면서 초반 게임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1시간 정도였던 게임 시간이 이제는 3시간 정도 된다. ‘성적은 잘 나왔느냐’는 질문에 안톨릭 씨는 “공교육에 대한 기대는 접었다”는 말로 답변을 대신했다.

이런 사례가 늘어나자 곳곳에서 학부모 불만이 급증하고 있다. 학생의 학습 동력 및 자극이 사라지고 선생님이나 친구와의 교감도 사라져 사회성 발달까지 늦어진다는 우려가 속출하고 있다.

○ 이민자·저소득층 학생 집중 피해

온라인 수업 장기화에 따른 성적 하락은 수치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카운티 교육당국의 내부 보고서와 워싱턴포스트(WP) 보도 등에 따르면 지난해 9월, 10월 두 달간 최소 2개 이상의 과목에서 최하위 점수 ‘D’, 낙제점 ‘F’를 받은 중학생 수가 2019년 같은 기간에 비해 350% 늘었다.

특히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학생, 경제적으로 어려운 집안의 학생들은 낙제 비율 증가 속도가 더 빨랐다. 두 집단의 F학점 증가율은 각각 383%, 375%였다. 특히 히스패닉 학생 중 2개 이상 F를 받은 학생의 비율은 같은 기간 13%에서 25%로 증가했다.

2019년 2%에 불과했던 페어팩스 전체 학생 중 F학점의 비율 또한 조사 당시 8%로 높아졌다. WP가 “페어팩스 카운티의 성적 하락은 전례 없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지적한 이유다.

하지만 모든 학생의 성적이 다 하락한 것은 아니다. 보고서에는 ‘성적이 상위권에 속했던 학생들의 경우 큰 차이가 없거나 일부 더 좋아졌다’는 내용이 담겼다. 결국 코로나19가 최상위권 학생의 학업 성적 및 수업 집중도에는 별 타격을 미치지 않았지만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이민자,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터넷 수업환경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저소득층 학생에게 더 큰 피해를 안겼다는 의미다. 미국의 고질적인 양극화 문제를 더 키울 수 있는 불안 요인인 셈이다.

한국과 달리 사설학원이 많지 않은 미국은 공교육이 무너지면 사실상 대안이 없다시피 하다. 스터디닷컴, 디스커버리러닝 같은 온라인 과외 프로그램이 있지만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고, 이미 온라인 수업에 진절머리를 내는 학생에게 별 효과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 교사 노조 “개교 반대” vs 일부 학부모 “차라리 홈스쿨링”

버지니아 교육당국은 지난해 7월, 9월, 11월 세 차례 대면 수업을 재개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상황 악화를 이유로 매번 막판에 취소하는 바람에 학부모 불신이 더 가중됐다.

당국의 오락가락 행보에 교사 노조의 강한 반대가 작용했다는 점도 학부모 불만을 키우는 요소다. 당시 버지니아 교사 1만2000명은 랠프 노덤 주지사에게 서한을 보내 “100% 온라인 수업을 유지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감염 위험이 여전한 상황에서 수업을 재개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학부모들 역시 주지사에게 “코로나19 위험은 관리가 가능하지만 비대면 수업 장기화에 따른 학생의 정신적, 심리적, 학습적 폐해는 수년간 이어질 수 있다”는 서한을 보냈다. 학부모와 교사가 정면으로 맞서는 상황은 지금도 여전하다. 일부 강성 교사단체는 “여름방학을 포함해 올해 8월 말까지 100% 온라인 수업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미 지난해 7월 페어팩스 교육당국이 학부모에게 “100% 온라인 수업만 할 것인지, 일부는 오프라인 수업을 할 것인지 택하라”는 설문조사를 실시했을 때 응답자의 3분의 2가 “일부 오프라인 수업을 원한다”고 답했다. 코로나19 감염 위험을 감안한다 해도 100% 온라인 수업 장기화에 따른 문제점이 더 크다고 인식하는 학부모가 더 많았다는 의미다.

버지니아 내 일부 사립학교가 코로나19 와중에도 대면 수업을 실시하고 있다는 것에 불만을 표하는 학부모도 있다. 특히 교육열이 높은 인도계, 유대계 부모들을 중심으로 “공립학교에서도 대면 수업을 재개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한다.

인도계 학부모 안후드 쿰 씨는 “바로 옆 사립학교에 다니는 친구네 아이들은 아무 문제가 없이 학교를 다닌다”며 “코로나19가 문제라는데 왜 공립학교는 문을 닫고 사립학교는 문을 열게 놔두느냐.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불만을 표했다. 그는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을 사립학교에 보내는 방안을 이미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일부 학부모는 홈스쿨링을 택했다. 또다른 매클린 거주민 애니 몬슬라브 씨(43·여)는 중학교 2학년 아들에게 ‘아베카(ABEKA)’라는 홈스쿨링을 시키겠다고 밝혔다. 경미한 자폐증세가 있는 그의 아들이 온라인 수업에 집중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몬슬라브 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페어팩스 카운티의 질 좋은 수업을 기대하고 남부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이 먼 곳으로 이사를 왔다. 결과적으로 정말 실망했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홈스쿨링의 교과 프로그램이 훨씬 효율적인 데다 수업 속도와 분량을 맞춤형으로 조절하기도 훨씬 편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 일부 전문가 “장기휴교 피해, 회복 불가능”


이런 상황은 버지니아를 넘어 미 전역에서 동시에 나타나는 문제이기도 하다. 특히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이민자 가정의 자녀에게 100% 온라인 교육은 사실상 불가능하므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우선 자녀보다 영어가 유창하지 못한 부모가 도움을 주기 어렵다. 또 선생님, 친구들의 표정과 제스처에서 읽는 문화적 의미와 미묘한 뉘앙스를 몸으로 학습할 기회가 사실상 사라져 교육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2019년 방글라데시에서 뉴욕 브롱크스로 온 타니야 리아 양(11)은 1년 만에 엄마를 위해 영어 통역을 해줄 정도로 영어 실력이 늘었다. 그러나 그가 미국 친구를 본격적으로 사귀기 시작했을 때쯤 코로나19 여파로 휴교령이 떨어졌다. 리아 양은 “친구들과 복도에서 수다를 떨거나 점심을 같이 먹으면서 대화할 기회가 아예 없어져 버렸다. 자신감 또한 사라져 성격이 더 내성적으로 바뀐 것 같다”며 “1년을 그저 낭비한 느낌”이라고 토로했다.

6년 전 중남미 도미니카공화국에서 뉴욕 브루클린으로 온 서배스천 그린 군(14) 역시 “집과 동네에서 스페인어만 쓴다”며 영어를 쓸 기회가 사실상 사라졌다고 했다. 교육 전문가 잭 슈나이더 매사추세츠대 교수 또한 “장기 휴교로 학생들이 입은 피해가 회복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이정은 워싱턴 특파원 lightee@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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