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의 인텔 반도체 인수[횡설수설/김광현]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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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이천의 특산물을 묻는 초등학교 시험문제에 ‘반도체’라고 써낸 답안이 있었다. 선생님이 기대한 답은 아마도 쌀 도자기 복숭아 정도였을 것이다. 틀렸을까 맞았을까. 채점 결과는 모른다. SK하이닉스가 제작한 가상의 광고 스토리다. SK하이닉스 본사는 이천에 있는데 이천에서 가장 많은 세금을 내는 기업이고 고용 인원도 2만 명 정도로 가장 많다. 이천시로선 특산물을 넘어선 보물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이제 SK하이닉스의 반도체가 세계적 특산물이 될 것 같다.

▷어제 SK하이닉스가 인텔과 90억 달러(약 10조2591억 원) 규모의 인수 계약을 체결했다. 메모리 반도체 부문, 그중에서도 낸드플래시 분야다. 초창기 반도체 구분법은 데이터를 저장하지 못하지만 처리가 빠른 비메모리 ‘램(RAM)’과 늦지만 반영구적으로 저장할 수 있는 메모리 ‘롬(ROM)’이었다. 저장과 속도를 통합한 것이 D램과 낸드플래시다. 둘 중에서도 속도는 D램, 저장은 낸드플래시가 장점을 갖고 있다.

▷스마트폰의 메모리 용량이 512GB(기가바이트)까지 갈 수 있는 것은 낸드플래시, 카메라가 빛을 순간적으로 전자신호로 바꿀 수 있는 것은 D램 덕분이다. D램과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세계시장 점유율 1위는 삼성전자다. SK하이닉스는 D램은 2위, 낸드플래시는 5위였다. 이번 인수로 낸드플래시도 2위에 올라서게 됐다. 이제 D램과 낸드플래시 모두에서 1, 2위가 한국 기업이 된다.

▷세계 반도체 시장은 요동치고 있다. 미국의 그래픽 반도체 기업인 엔비디아는 올해 8월 영국의 반도체 설계회사인 ARM을 소프트뱅크로부터 400억 달러에 인수한다고 밝혔다. 구글도 자체적으로 반도체 개발에 나섰고, 테슬라는 AI 반도체 칩을 개발해 자율주행 차량 신모델에 적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하이닉스는 굴곡의 역사를 갖고 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빅딜에서 정부가 전경련을 통해 LG반도체를 떼어내 현대전자로 합병시켜 버렸다. 이후 현대하이닉스는 부진을 면치 못하다가 현대그룹에서 떨어져 나왔고, 공개 매물로 나와 있던 것을 10년 뒤 SK그룹이 도박에 가깝다는 말을 들으면서 인수했다.

▷SK하이닉스의 제2공장은 충북 청주에 있는데 청주국제공항의 활주로가 시작되는 마을 이름이 비상리(飛上里)다. 조상들이 마치 공항이 들어설 걸 예견하고 지은 것처럼 우연치고는 참으로 절묘하다. 인텔 메모리 사업 인수를 계기로 SK하이닉스가, 나아가 한국의 반도체 산업이 ‘K반도체’로 한 단계 더 비상(飛上)하기를 기대해 본다. 우연을 만든 것은 하늘의 일이요, 우연을 필연으로 만드는 것은 사람의 일이다.

김광현 논설위원 kkh@donga.com
#경기 이천#특산물#반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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