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월세 시장 변화, 한발 앞서 대비하려면[동아광장/하준경]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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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차 3법’ 세입자 주거 안정성에 한발… 전세시장 안정 속도 금융 정책이 좌우
투자용 ‘빈집’ 해외 부동산 대란 사례, 희소한 땅 재산 안식처로 놀리는 행위 규제
‘빈집세’로 시장안정 자원활용 높여야

하준경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하준경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미국에선 6개월이나 1년 정도 자기 집에 들어와 살면 돈을 주겠다는 광고를 가끔 볼 수 있다. 집주인이 집을 비우게 됐는데, 그냥 놔두기가 불안하니 하우스 시터(house sitter), 즉 집 봐주는 사람을 고용해 임금을 주겠다는 것이다. 비슷한 집을, 살림살이가 갖춰진 임대주택으로 내놓는다는 광고도 쉽게 볼 수 있다. 두 경우가 유사해 보이지만 전자엔 마이너스 임대료, 후자엔 일반적 임대료가 설정된다.

두 거래의 본질적 차이는 임차인의 주거 안정성이다. 하우스 시터는 수동적으로 집주인의 필요에 맞춰줘야 하므로 오히려 대가를 받는다. 반면 대다수 선진국의 임차인은 원하면 계속 살 수 있고, 임대료 인상도 일정 범위 내로 제한된다. 이런 면에서 ‘임대차 3법’은 한국 임차인의 권리를 하우스 시터 쪽에서 선진국 임차인 쪽으로 한 발짝 옮기는 조치다.

그러나 그 대가로 전세시장이 소멸할 것이라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재량권이 줄어든 임대인이 세를 놓느니 차라리 자녀나 조카를 일정 기간 하우스 시터로 들일 것이라는 지적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임대인이 임대차 계약을 꺼리게 됐다고 하자. 그러면 전세가 급속히 소멸할까.

전세는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집을 빌려주는 임대차 계약이면서 동시에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돈을 빌려주는 사금융 계약이다. 두 계약이 중첩돼 있다. 따라서 전세의 소멸은 이 두 계약이 동시에 사라질 때만 가능하다. 임대차 계약을 정리하려면 사금융 계약도 함께 해소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전세금을 반환해야 하고 많은 경우 금융권에서 돈을 빌릴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전세제도의 급속 소멸 여부는 금융정책에 달려 있다.

돌이켜 보면 2014년에 주택대출 규제가 완화돼 은행에서 큰돈을 빌릴 수 있게 되자 집주인들은 전세에 덜 의존하게 됐고, 은행돈으로 전세 보증금을 갚은 후 전세를 월세로 돌릴 수 있었다. 전세 공급은 줄었고 2016년엔 전세 살던 사람들 상당수가 월세나 반전세를 살게 됐다. 하지만 2017년 이후엔 대출 규제가 부분적으로나마 강화되며 전세가 다시 늘었다. 앞으로 당국이 모든 주택대출에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빈틈없이 적용하고, 은행들이 차주의 주택 투자 위험도를 대출금리와 한도에 충실히 반영하도록 감독한다면 전세가 충격적으로 소멸하진 않을 것이다. 금리와 지역 물량에 따라 전세 가격이 출렁일 수는 있다.

금융 규제가 제대로 작동하면 전세 시장은 서서히 조정될 수 있다. 그러나 변화는 불확실성을 수반하는 만큼 우려의 목소리, 특히 ‘집을 비워두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말을 가볍게 흘려들어선 안 된다. 이것이 홍콩 시드니 밴쿠버에서 일어났던 부동산 대란의 전조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저금리에 임대수익률도 낮은데, 임대를 주면 귀찮게 되니 집을 그냥 비워두고 집값 상승 이득만을 기대하자는 이들이 늘 수 있다. 빈집을 장기적 가치저장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례도 확산될 수 있다.

한국의 대다수 임대인들은 금융비용 때문에 이럴 엄두를 못 내지만 일부 부유층이나 외국인들이 이 흐름을 만들 수 있고, 많지 않은 물량이라도 이렇게 잠기면 파급효과는 증폭된다. 프랑스 파리에선 전 세계 부자들이 사놓고 비워둔 집이 너무 많아 빈집이 20만 채에 달했다. 중국인 부자들의 집 사재기는 유명하다. 최근엔 홍콩에서도 돈이 나온다. 세계를 떠도는 돈들이 서울로 더 유입되면 서울 빈집도 늘 수 있는데, 이는 임대차 시장에서 공급 물량을 줄이면서 임대료와 집값을 동시에 폭등시키는 치명적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

이런 문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려면 캐나다 영국 호주 프랑스 홍콩 미국 등에서 도입했거나 추진 중인 ‘빈집세’를 적어도 일부 지역에 적용할 필요가 있다. 희소한 땅을 재산 안식처로 쓰려고 놀리는 행위에 대해 그 사회적 비용만큼 세금을 부과하면 자원 이용의 효율을 높이고 임대차 시장을 안정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또 빈집세는 임대인이 인위적으로 공급을 줄여 마켓파워를 과하게 행사하거나 임차인에게 세금을 떠넘기는 등의 갈등 요인도 줄여준다. 양질의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해 시장에 선택지를 늘려주는 것은 기본이다.

하준경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전월세 시장#하우스 시터#임대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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