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은 기회다[현장에서/이승건]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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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어 트레이닝에 집중하고 있는 오주한(왼쪽)과 티모 리모 트레이너.
코어 트레이닝에 집중하고 있는 오주한(왼쪽)과 티모 리모 트레이너.
이승건 스포츠부 차장
이승건 스포츠부 차장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세계 마라톤은 멈췄다. 오주한(케냐명 윌슨 로야나에 에루페·32·청양군청)은 멈추지 않고 있다. 훈련 여건은 과거 어느 때보다 좋다. 대한육상연맹(회장 배호원)이 ‘한국인 오주한’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주한은 요즘 케냐 엘도렛에서 오창석 백석대 교수의 지도 아래 훈련하고 있다. 2011년 오주한을 발굴해 귀화까지 시킨 오 교수는 1월 말 휴직하고 남자 마라톤 대표팀 코치 자격으로 현지에 갔다.

7월 열릴 예정이던 도쿄 올림픽 연기로 예상치 못했던 1년의 시간이 주어지자 육상연맹과 오 교수는 집중적인 코어 트레이닝(몸통 중심 부분의 근육을 발달시키는 훈련)을 통해 부상에 약했던 오주한의 몸을 바꾸는 일에 나섰다. 이를 위해 3월 중순 티모 리모라는 전담 트레이너까지 고용했다. 리모는 올림픽에서 금메달만 4개를 딴 ‘장거리 황제’ 모 패라(영국)와도 함께했던 세계적인 트레이너다. 오 교수는 “올림픽이 올해 열렸다면 기초 훈련인 집중 코어 트레이닝은 생각도 못 했을 것이다. 덕분에 부상 걱정을 덜고 스피드 훈련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리모 트레이너는 “오주한처럼 파워가 좋은 선수는 처음이다. 2시간3분대까지는 기록을 단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주한의 최고기록은 2시간5분13초다.

세계 1, 2위 기록 보유자인 엘리우드 킵초게(36·케냐·2시간1분39초), 케네니사 베켈레(38·에티오피아·2시간1분41초)의 나이가 많다는 점도 오주한으로서는 반가운 일이다. 특히 올림픽 2연패를 노리는 세계적인 선수 킵초게의 경우 오주한과 달리 대형 에이전트사의 지원 속에 단체 훈련을 해왔는데 케냐 정부가 4월부터 팀 훈련과 운동장 사용을 금지하는 바람에 훈련 방식에 큰 변화가 생겨 혼란을 겪고 있다. 오주한은 케냐의 투르카나에서 태어났다. 이곳에 사는 투르카나족(族)은 케냐에서도 가장 가난하고 천대받는 민족이다. 달리기를 잘했던 이 부족 출신 청년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세계로 눈을 돌렸고 2011년 10월 경주국제마라톤에 처음 출전해 우승했다. 이후 더 많은 상금이 걸린 대회를 마다하고 오직 한국에서만 뛰며 서울국제 4회, 경주국제 3회 우승을 달성했다. 그리고 여러 차례의 시도 끝에 2018년에 바라던 한국 국적을 얻었다. 오주한(吳走韓)이라는 이름은 ‘오직 한국을 위해 뛴다’는 의미다. 그에게 태극마크를 달고 뛸 도쿄 올림픽은 그야말로 ‘인생 레이스’다.

한국 마라톤은 코로나19 훨씬 이전부터 멈춰 있다. 올림픽에서 마지막으로 메달을 딴 것은 24년 전이고, 한국 기록은 2000년 이봉주가 세운 2시간7분20초가 20년 동안 그대로다. 오주한에게 기다림은 기회다. 1년의 시간이 오주한의 ‘코리안 드림’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이승건 스포츠부 차장 why@donga.com
#세계 마라톤#코로나19#오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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