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외면한 주52시간 근로[현장에서/김동혁]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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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이 은행에서 대출상담을 받고 있다. 홍성=뉴시스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이 은행에서 대출상담을 받고 있다. 홍성=뉴시스
김동혁 경제부 기자
김동혁 경제부 기자
시중은행에 다니는 A 씨는 지난 주말 밀린 일감을 집으로 들고 갔다. 요즘은 평일에도 오후 9시 넘게까지 일하는 경우도 잦아졌다. 주택담보대출 등 기존 업무에 더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극복을 위한 자금 지원 업무까지 더해지면서 일이 산더미처럼 쌓였기 때문이다. 밀려드는 대출 신청을 처리하고 일일이 보증기관에 확인하다보면 업무시간 중에 다른 업무는 아예 쳐다보기조차 힘든 상황이다.

그렇다고 드러내놓고 일을 많이 해선 안 된다. 법에서 정한 ‘주 52시간’을 넘기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렇다보니 현장에선 각종 편법이 나타난다. 한 은행 영업점에선 퇴근시간에 PC가 자동으로 꺼지는 ‘PC 오프’ 프로그램에 깔리지 않은 컴퓨터 1대를 이용해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대출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도입한 재택근무도 사실상 공식 근무시간을 줄이기 위한 편법처럼 활용되기도 한다.

코로나19로 처리해야 할 일은 폭증했는데 공식 근로시간을 마음대로 늘릴 수 없으니 대출 절차는 계속 지연되고 있다. 코로나19로 매출이 급감해 한시가 급한 중소상공인들과 자영업자들은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은행들은 “인력 재배치 등을 통해 현장 인력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고 강조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업무량 증가와 민원 스트레스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근무시간 연장이 불가피하다고 인정하는 은행 직원들도 많다. 한 은행 직원은 “차라리 공식적으로 초과 근로를 해 업무 속도를 높이고 대신 수당을 지급하는 게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직원과 고객을 모두 힘들게 하는 비정상적인 근로행태가 벌어지는 것은 경직된 주 52시간 근로제 때문이다. 국가적 비상상황에서 국책은행장이 “주 52시간 근로제를 위반했다”며 노조로부터 고발당하는 어이없는 일까지 벌어졌다. IBK기업은행 노조 측은 “다른 일을 줄여 코로나19 관련 업무에 매진하자는 의도”라고 해명했지만 도가 지나쳤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융통성 없는 주 52시간 근로제 운영이 노사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은 19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1차 비상경제회의에서 50조 원 규모의 비상금융조치를 발표하며 ‘지원의 속도’를 강조했다. 또 “통상적 상황이 아닌 만큼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을 더 해야 하는 상황에서 일을 할 수 없게 묶어두고는 은행들에 지원 속도를 올리라고 닦달하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다. 특별연장근로 사유를 대폭 늘리는 등 주 52시간 근로제의 틀을 넘어서는 근로시간의 유연한 적용이 한시적으로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금은 사실상 전시(戰時) 상황이다. 위기에는 위기에 맞는 정책이 필요하다.
 
김동혁 경제부 기자 hack@donga.com
#주52시간 근로#코로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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