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이후’의 韓日관계는 다를까[동아 시론/요시카타 베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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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정치권-여론 한국 ‘우군’ 거의 없어… 총리 바뀌어도 관계 개선 기대 못 해
젊은층-민간 교류로 돌파구 만들어야

요시카타 베키 서울대 언어능력측정센터 선임연구원·심리학 박사
요시카타 베키 서울대 언어능력측정센터 선임연구원·심리학 박사
2015년 말의 일이다. 일본 국립감염증연구소에서 전문가들이 방한했다.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조사 목적이었다. 그해 5월 발생한 메르스 사태는 한국 사회에 아픈 기억이다. 그렇지만 당시 치료를 맡은 병원과 질병관리본부의 경험담을 들으면서 일본 전문가들 입에선 “정말 큰일을 해냈다. 우리가 같은 상황에서 과연 그 사태를 수습해낼 수 있었을까” 하는 말들이 새어 나왔다. 모든 일정을 동행한 나는 내 일처럼 뿌듯했다. 한 일본 전문의는 2년 후 또 다른 감염병에 대한 정보 공유 목적으로 한국을 재방문하면서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뉴스에는 나오지 않더라도 수많은 분야에서 서로 존중하고 배우는 정다운 만남이 한일(韓日) 사이에는 늘 존재해 왔다. 최근 코로나19 사태는 이웃 나라를 옆에 두고 홀로 잘될 수 없다는 현실을 새삼스럽게 보여줬다. 특히 가깝고 공통점이 많은 한일 양국은 이 동북아 지역을 더욱 빛내기 위해서라도 협조하고 상생해야 한다.

그렇지만 현실의 한일 관계는 여러 현안을 둘러싸고 심각한 악순환에 빠진 지 오래다. 강제징용 문제와 관련해 나는 한국의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당사자의 증언을 들었고, 그 내용이 일본에서 신문기사로 결실을 맺은 적이 있다. 나도 빨리 해결되기를 간절히 원하는 입장이다. 그런데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이 문제에 대해 양국 간 약속으로 끝난 문제라고 강경하게 선을 그었다. 이후 현재까지 교착 상태다.

그렇다면 아베 총리만 정권에서 물러나면 모든 것이 해결될까? 아니다. 양국의 현안에서 한국 입장에 옹호적인 일본 정당은 일본 공산당뿐이다. ‘수출규제를 지지하고 한국의 태도 변화 없이는 한일관계 개선 노력도 필요 없다’는 지금의 일본 내 여론이 바뀌지 않는 한 주류 정치인들이 대한(對韓) 정책을 바꿀 가능성은 없다. 앞으로의 한일 관계에는 일본 국내 여론도 매우 중요하다.

일본 정부의 무례하고 야비한 수출규제 조치 이후 분노한 한국 국민은 그 충격을 소재 의존도 해소와 불매운동의 성과로 완전히 씻어낼 수 있었다. 일본 여론으로 하여금 아베 정권에 반대하게 만든다는 또 다른 목표는 어땠을까. 언론사 협조를 받아 일본 현지에서 조사를 진행했다. 한국에 친근감이 많은 젊은층은 불매운동을 비교적 잘 인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상황 인식은 기가 막혔다. ‘불매운동이란 소수의 극단적인 사람들이 선동하는 일에 불과한데, 일본의 혐한(嫌韓) 언론이 한국을 폄하하기 위해서 부풀려서 보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반대로 혐한파들은 불매운동을 혐한 선동에 이용하고 있었다. 문제는 중년 이상의 평범한 일본인들에게 그 논리가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점이다. 모든 문제는 한국인의 고질적인 반일(反日) 정서 때문이란 억지다. 일본인 의식이 그런 수준이다 보니 아베 정권에 한국은 유일하게 ‘관계가 악화돼도 별 부담이 없는 나라’가 됐다. 혐한파는 한국에 대한 강경 자세를 열렬히 지지하고, 일반 일본인은 따로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일본 사회의 인식이 한심하기만 하다. 하지만 오해라는 것은 해소가 되는 순간 극적인 상호 이해의 실마리로 변하기도 한다. 그리고 바뀔 때는 물갈이하듯 바뀌는 게 여론이다.

해법은 민간 교류를 통한 공감대 형성이다. 작년 9월 아사히신문 여론조사 결과에 의하면 30세 미만 일본인의 13%만이 한국을 싫어한다고 한 반면에 23%가 명시적으로 좋아한다고 응답했다. 일본 사회의 미래 주인공인 이들은 한국에 대한 편견에서 자유롭다. 기성세대의 변화도 시작됐다. 현재 폭넓은 연령대의 여성들이 한국 소설에 빠져 있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한국 여성의 고뇌를 같은 여성으로서 공감하고 용기를 얻고 있다. 공감이란 남의 경험이나 감정을 내 것처럼 느껴야 생기는 것이다. 오해나 편견에 대한 백신으로 교류를 통한 공감만 한 것은 없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국민감정이 최악의 상태였던 프랑스와 서독은 1963년에 맺은 엘리제조약에 따라 양국 청년들이 엄청난 규모로 상대 국가를 방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독에서 1968년부터 학생을 중심으로 역사를 바로잡는 운동이 활발해져 역사인식의 전환점이 됐다. 독일과 프랑스의 관계 개선은 지금의 유럽연합(EU)에 이르는 유럽 통합의 계기가 됐다. 한국과 일본이 아시아에서 이런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베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는 다음 기회를 놓치지 않고 개선의 시발점으로 활용해야 한다. 전환점은 두 나라 국민의 만남으로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요시카타 베키 서울대 언어능력측정센터 선임연구원·심리학 박사
#한일관계#일본 여론#혐한 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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