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고는 고교 공교육의 모범[기고/김철경]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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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경 서울 대광고 교장·서울자사고교장연합회장
김철경 서울 대광고 교장·서울자사고교장연합회장
교육부가 결국 자율형사립고(자사고) 설립 근거를 시행령에서 삭제시키며 2025년 일괄 폐지라는 악수(惡手)를 뒀다. 정부는 국민을 보호할 책무가 있다. 또 교육에 있어서는 국민의 교육받을 권리, 학교 선택권을 잘 유지하도록 할 책임이 있다. 사학에는 자주성을 부여하고 교육 신장에 충실하도록 해야 하는 의무도 있다.

그러나 정부는 우수 학생 선점, 사교육 유발, 설립 목적에 맞지 않는 교육 등의 이유를 들며 자사고를 적폐로 모는 듯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교육적 논리에 어긋나는 어설픈 궤변이다. 일부의 편향된 주장만 들은 뒤 국정과제로 선택해 몰아붙이는 것은 획일적 평등이라는 ‘교육 질환’을 또다시 앓게 할 뿐이다.

자사고는 평준화 교육으로 무너진 공교육을 살리기 위해, 다양성과 수월성 교육을 위해 출발했다. 서울지역 자사고는 중학교 내신 성적과 상관없이 지원할 수 있으며, 단순 면접 또는 완전 추첨으로 선발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우수 학생 선점이나 사교육 유발이라는 주장은 현실과 맞지 않다. 고교 학점제 전면 시행을 위해 자사고를 일괄 폐지하겠다는 것도 전체 고교 교육의 차원에서 보면 전혀 논리적이지 않다.

정부는 자사고가 설립 목적대로 운영되지 않았다며 지정 취소가 당연하다는 의견인데 그 근거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자사고는 건학이념에 맞춰 학생들의 다양한 꿈과 끼를 키워주고 미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정해진 교육체계와 제도 아래에서 엄격히 운영되고 있다. 국제 바칼로레아(IB) 교육, 건학이념에 충실한 전인교육 등 다양한 특성의 교육과정을 마련한 것이다. 영국의 이튼스쿨, 미국의 필립스아카데미처럼 대한민국의 명문 사학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국가 균형발전을 위한 교육정책을 추진하려면 수준 높은 교육 인프라를 지닌 명문고가 서울 강북, 강남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전역에 골고루 자리해야 한다. 그래야 교육 기회의 평등이 구현된다. 결국 지금의 자사고가 교육을 더 잘하게 이끌어주는 것이 정부의 마땅한 도리다.

교육부는 자사고를 입시 위주 학교, 학교 서열화의 주범이라고 지목한다. 그리고 획일적인 평등교육으로 회귀하라며 사실상 명령하고 있다. 하지만 설령 자사고가 폐지된다고 해도 입시 경쟁과 사교육 열기, 학교 서열화는 또 다른 형태로 이어질 것이다.

정부는 교육제도 법정주의를 지켜야 한다. 헌법 제31조 제6항, 교육기본법 제9조 4항, 초중등교육법 제61조,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91조 3항 등 법에 명기된 학교 유형을 강제로 삭제해서는 안 된다. 교육정책을 어느 한쪽 교육집단의 왜곡된 주장에 흔들려 조변석개(朝變夕改)해서도 안 된다.

교육정책은 일관성을 유지해야 하고 예측 가능해야 한다. 교육의 주체인 학생은 물론이고 소수 국민의 목소리도 반영해야 한다. 학교 유형같이 중요한 사항을 해당 사학들과 단 한 번의 협의도 없이 추진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시행령 조항을 단순히 삭제하는 것만으로 자사고 전체를 한꺼번에 없앤다는 건 대한민국 교육정책의 수치다.

김철경 서울 대광고 교장·서울자사고교장연합회장
#자사고 폐지#교육 정책#공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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