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 우리 집[이재국의 우당탕탕]〈28〉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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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딸 친구들이 집에 놀러 와서 한참을 놀았다. 열두 살 친구들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별거 아닌 일에도 ‘까르르’ 숨넘어갈 듯 웃어댄다. 딸 친구들이 자기들끼리 신조어나 줄임말을 섞어가며 얘기하면 그러려니 했다. 사실 예전 한자문화 시절에도 줄임말이 많이 있었으니까. “까불지 마. 너는 나에 비하면 새 발의 피야 인마!” 이런 말을 줄여 ‘조족지혈’이라 했고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롭구나!” 이런 말도 ‘풍전등화’라 줄여서 썼으니까. 뭐, 어느 시대나 자기들만의 문화는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내 귀에 생경한 느낌의 말이 들려왔다.

“이제 내 집에 가서 놀자!” 응? 뭐지? “우리 집에 가서 놀자”가 아니라 “내 집에 가서 놀자?” 그러고 보니 딸아이도 언제부턴가 ‘우리 집’ 대신 ‘내 집’이라는 표현을 자주 썼고 ‘우리 엄마’라는 말 대신 ‘내 엄마’라는 말을 더 자주 쓰는 것 같았다. 그 이유가 궁금해 딸에게 물었다. “친구들이랑 얘기할 때 우리 집이라고 안 하고, 왜 내 집이라고 해?” “응? 여기는 내 집이잖아. 내 집인데 친구한테 왜 우리 집이라고 해? 그 친구랑 나랑 가족도 아닌데.” “아…. 그래서 엄마도 내 엄마라고 하는 거야?” “응. 내 엄마잖아.”

듣고 보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나도 어린 시절, 친구들과 얘기할 때 내 집인데 왜 우리 집이라고 하고 내 엄마가 맞는데 왜 우리 엄마라고 하는지 궁금했던 적이 있다. 누가 정확히 설명해준 적은 없지만 우리 문화에는 정이라는 게 있어서 조금만 친해도 우리라는 말이 자연스럽고, 공동체 문화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내 집에 놀러와”보다는 “우리 집에 놀러와”라는 말이 더 정겨워 보였고 “내 엄마가 해주신 갈비찜이야!”라는 말보다는 “우리 엄마가 해주신 갈비찜이야!” 이 말이 더 자연스러웠던 것 같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우리라는 말보다는 나라는 말이 더 자연스럽고 상대방에게 부담을 안 준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회사에서도 우리라는 말을 강조하기가 참 어렵다. 예전에는 ‘내 일’보다는 ‘우리 일’이 먼저라고 배웠고 우리 일이 잘돼야 내 일도 잘되는 거라고 배웠는데, 요즘 아이들에게는 내 일이 따로 있고 ‘너의 일’이 따로 있는데 우리 일은 또 뭔가 싶을 거다. 우리 일을 강조하는 사람을 보면 오지랖이 넓다고 생각하거나 꼰대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내 집 세대와 우리 집 세대를 경험하다 보니 지나친 비약일 수도 있겠지만 이대로 가면 가까운 미래에 우리라는 말은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특히 요즘처럼 생각이 좌우로 나뉘고 세대 간의 갈등이 심해지다 보면 나는 점점 강조되고 우리는 점점 작아질 게 뻔하다. 그러다 보니 나는 요즘 이런 생각을 자주한다. “우리가 진짜 2002년 월드컵 때 한목소리, 한마음으로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을 외쳤던 사람들이 맞나? 우리가 진짜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에서 김연아 선수가 금메달을 땄을 때 다같이 우리 일처럼 기뻐했던 사람들 맞나? 우리는 우리라는 이름으로 언제쯤 또 한 번 뜨거워질 수 있을까.”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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