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여성팬의 환호성… 씨름 뒤집기 성공할까[오늘과 내일/윤승옥]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0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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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트로 열풍 타고 기사회생… 콘텐츠 ‘재해석’에 부활 달려 있어

윤승옥 채널A 스포츠부장
윤승옥 채널A 스포츠부장
‘벼락같은 축복’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요즘 씨름 분위기를 설명하는 데 이만한 말이 없다. 1980년대 시청률 60% 넘는 인기를 누렸던 씨름은 팬들의 외면으로 2000년 이후 존재감을 완전히 상실했다가 최근 젊은 여성 팬들의 환호성으로 급속히 살아나고 있다. 평범한 씨름 동영상 하나가 유튜브 조회 수 200만 개에 육박하는 전례 없는 일이 생겨났다. 씨름 예능도 곧 등장한다. 씨름협회는 때아닌 횡재에 그저 비명을 지를 뿐이다.

식스팩이 드러나는 근육질 몸매와 이 근육들이 구현하는 역동적인 씨름 기술이 벼락같은 인기의 핵심 이유다. 과거 씨름을 주름잡았던 살집 좋은 백두장사들과 그들의 단선적인 힘 대결은 관심 사항이 아니다. 몸짱, 얼짱에 환호하는 요즘의 소비 코드가 씨름을 완전히 재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 소비 시장의 트렌드인 ‘뉴트로’가 씨름에도 손길을 뻗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뉴트로(Newtro)는 새로움(New)과 복고(Retro)를 합성한 말로, 옛것을 새롭게 해석해 소비하는 행위를 말한다. 젊은 세대들은 씨름을 유서 깊은 전통 스포츠가 아닌 몸짱 미소년들의 역동적인 힘겨루기로 재해석하고 소비하고 있다. 그들에게 씨름은 새로운 보고였다.

젊은 세대가 살려낸 불꽃, 이제 씨름계가 키워낼 차례다. 씨름협회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는 등 몇 가지 마케팅을 추진하고 있지만 실무적인 방안에 앞서 본질적인 질문부터 해야 한다. 씨름이란 무엇인가. 왜 몰락했던 것일까. 무엇을 지향해야 할 것인가 등. 여기에 답을 하지 못하면 갓 살아난 불씨는 금세 시들해질 것이다.

씨름은 출범 당시 ‘민속씨름’이라고 정의했지만 모래판엔 전통을 구현하는 요소는 거의 없었다. 스토리텔링이 약했고, 이만기와 강호동 등 몇몇 스타에게 의존할 뿐이었다. 또 체중 제한이 거의 없는 백두급 선수들의 비대화로 승부의 긴장감이 뚝 떨어졌다. 다른 경쟁자(볼거리)가 우후죽순 생겨났지만 오만하고 오판했다. 단순 샅바 싸움으로 전락했다.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 영역이 그렇다. 사랑을 못 받으면, 숙명적으로 의미 없는 몸짓이 된다.

씨름계의 해석 능력이 결국 부활의 키를 쥐고 있다. 종목의 본질과 시대적 흐름을 적절히 결합해 콘텐츠를 재구성해야 한다. 가령 관중석을 모래판 쪽으로 바짝 붙여 놓으면 관중에게 모래가 튈 것이고, 근육의 움직임이 선명하게 보일 것이고, 땀과 거친 호흡이 고스란히 전해질 것이다. 복장과 세리머니 등도 과거와 현재가 호응해야 할 것이다.

세계를 휘어잡는 한류처럼 씨름도 외연 확장이 가능하다. 몽골, 터키 등 10여 개 나라에서도 씨름을 한다. 경쟁력 있는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면 모래판을 더욱 풍성하게 구성할 수 있다. 콘텐츠의 경쟁력이 높아지면 해외 시장도 노려 볼 수 있다.

일본 씨름인 스모의 인기는 우리 씨름과 비할 바가 아니다. 10만 원이 넘는 입장권도 금세 팔린다. 해외 유명 인사들이 열성팬을 자처하면서, 스시와 함께 일본 문화의 투톱으로 불린다. 그런데 스모는 스포츠라기보다 문화상품에 가깝다. 정화수를 마시고 소금을 뿌리는 의식이 5분이고, 승부는 5초 만에 끝난다. 우리 씨름은 박진감과 기술 구현력 등 여러 면에서 스모를 압도한다. 스포츠적인 면에서 경쟁력과 확장성이 훨씬 크다.

복고 호감도는 좀처럼 식지 않고, 지속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예측한다. 씨름이 부활하기에 일단 좋은 조건이다. 스포츠팬들은 물론이고 뉴트로와 관련된 수많은 산업 영역이 씨름의 해석 능력을 예의 주시하고 벤치마킹할 것이다. 씨름계의 사명이 크다. 뒤집기처럼, 화끈한 반전이 가능할 것인가.

윤승옥 채널A 스포츠부장 touch@donga.com
#씨름#뉴트로#모래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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