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동정민]유럽 포퓰리즘 돌풍… 전 세계의 업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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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민 파리 특파원
동정민 파리 특파원
독일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 앞에는 늘 ‘극우 포퓰리즘 정당’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AfD 하면 아돌프 히틀러를 추종하며 손을 머리 위로 뻗어 나치식 인사를 하고 인종차별적인 문신을 한 채 거리로 나서는 극우 인사들이 생각난다. 그런데 그런 그들이 최근 100년 정당인 사회민주당을 제치고 지지율 2위 정당이 됐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2015년부터 쏟아져 들어온 난민에 대한 불만 때문이라는 것은 반만 맞는 말이다. 숨겨진 또 다른 비결은 ‘신선함’과 ‘통쾌함’이다. 기성 정치인들을 쩔쩔매게 만드는 ‘통쾌한 한 방’이 정치에 짜증나 있는 국민들의 카타르시스를 높여주고 있다.

지난해 11월 AfD의 위르겐 폴 의원은 트위터에 “우리들은 모두 의회에 나와 있는데 옛날 정당들은 이렇다”는 글과 함께 비어 있는 의회장 사진을 올렸다. AfD는 국회에서 회의가 열리면 가장 일찍 회의장에 오는 정당이다. ‘폼만 잡고’ 의정활동에 소홀한 기성 정당에 한 방을 날렸다.

AfD가 추진 중인 정치 분야 정책을 살펴보면 마음이 혹할 만한 내용이 많다.

의원연금 개혁이 대표적이다. AfD는 “의원들은 돈 한 푼을 안 내도 45년 동안 연금을 내는 중산층 노동자보다 많은 돈을 받는다”며 의원연금 개혁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의원은 4선, 총리는 재선 이상 하지 못하도록 제한을 두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AfD는 또 ‘예산 낭비는 범죄’라는 슬로건과 함께 쓸데없는 건설, 비상식적인 조달 입찰, 특권층들에게만 이익이 가는 프로젝트에 예산을 쓸 경우 ‘사기죄’를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예산 낭비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국민들의 불만을 담아낸 정책이다.

국민의 인기에만 영합한다는 뜻의 ‘포퓰리즘’은 뒤집어보면 국민 목소리에 민감하고 이를 정책으로 실현한다는 것과도 이어진다. 유럽 포퓰리즘 정당이 최근 선거 때마다 승승장구하는 이유다.

3월 이탈리아 총선에서 1당을 차지하며 아예 정권을 잡아버린 포퓰리즘 정당 오성운동은 지난달 국회 표결에 참석률이 저조한 자당 소속 의원을 출당시켰다. 루이지 디마이오 대표는 “시민들로부터 부여받은 임무를 소홀히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갖은 문제를 일으켜도 한 석이 줄어들까 봐 모른 척 넘어가는 기성 정당과는 다른 신선한 결단이었다.

부총리이기도 한 디마이오 대표는 이달 들어 부정부패로 2년 넘게 징역형을 산 이는 다시 공직에 발 딛지 못하도록 하고, 2년 이하라도 선고받으면 이후 7년까지 국가 관련 사업에 참가 자격을 박탈하는 이른바 ‘뇌물 파괴법’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포퓰리즘 정당이 미칠 폐해를 우려하면서도 일단 국민들의 마음이 끌리는 건 과거 기성 정당들에서 보지 못했던 과감한 정치 개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포퓰리즘 정부 돌풍은 전 세계의 걱정거리다. 세금은 줄이고 국가 빚을 늘려 복지를 늘리는 정권, 자기 임기만 생색내고 미래의 재정 부담은 나 몰라라 하는 포퓰리즘 정권의 행태는 반드시 막아야 한다. 이탈리아 오성운동의 대선 공약을 이행하는 데만 100조 원이 넘게 들어갈 것으로 추산되는데 재원 조달 방안은 아직도 명확하지 않다.

이들의 인기를 식히는 방법은 기존 정당들이 포퓰리즘 정당보다 더 강한 개혁의 길로 나서 신뢰를 회복하는 것뿐이다. 포퓰리즘 정당이 전체 정치를 업그레이드하는 계기가 될지, 전 세계를 집어삼켜 대혼란의 길로 몰아넣을지, 그 키는 기성 정당들에 달려 있다. 결자해지다.
 
동정민 파리 특파원 ditto@donga.com
#독일을 위한 대안#유럽#포퓰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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