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진의 필적]〈22〉감성적인 독립운동가 한용운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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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운의 ‘성북영언’ 원고
한용운의 ‘성북영언’ 원고
만해 한용운(萬海 韓龍雲)의 친필이 경매에 나오면 경합이 치열하다. 귀하기도 하지만 선생을 존경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선생은 ‘님의 침묵’ 등 300여 편의 시를 남긴 시인이자 ‘조선불교유신론’을 간행하여 불교계의 혁신을 주장한 깨어 있는 승려였다. 3·1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으며 불교계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는 일도 맡았다. 시인과 독립운동가, 혁신과 자비는 서로 어울리기 어려운데 이를 절묘하게 조화시켰다. 평생 지조를 굽히지 않았으면서도 시인의 감성을 가진 선생을 어찌 존경하지 않을 수 있을까.

선생의 필획은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둥글다. ‘ㄱ’ ‘ㄴ’ ‘ㄹ’ 등에서 부드러운 선이 두드러진다. 천성이 착하고 감성적이며 부드러운 대화 능력을 가지고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 둥근 글씨를 쓴다. 대표적으로 ‘빈자의 성녀’로 불린 테레사 수녀를 꼽을 수 있다. 미국의 화가 조지아 오키프, 영화배우 제인 폰다, 영국의 다이애나 왕세자빈도 매우 둥근 글씨를 썼다. 식사 장애가 있는 여성에게서도 둥근 글씨가 발견된다고 알려져 있다. ‘ㄷ’의 중간 부분이 끊어져 있는 것을 보면 직관적인 면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강한 모서리도 가끔씩 나타나고 글자들이 일관성을 가지고 있다. 이를 보면 선생은 이성적이고 곧고 반듯했을 것이다. 친일로 변절한 인사들에 대해 장례식을 하자고 할 정도로 결기가 있었다. 가로선과 세로선이 매우 긴 것은 의지가 굳고 참을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총독부 반대 방향인 북향으로 집을 짓고 살았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ㄴ’ ‘ㄹ’ ‘ㅗ’ 등에서 마지막 부분이 길게 늘어지는 것은 큰 힘과 활력을 말해준다. 이성과 감성, 반듯함과 너그러움, 논리와 직관 등 조화되기 어려운 특성들이 조화를 이룬 큰 인물이었다.

구본진 변호사·필적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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