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교육은 없고 처벌만 남은 ‘학폭법’으로 법정이 된 학교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30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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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간 가벼운 신체접촉이나 사소한 말다툼까지 학교폭력으로 징계하도록 한 처벌 위주 학교폭력예방법이 오히려 학교를 멍들게 하고 있다. 최근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엘리베이터에서 자신을 노려봤다고 학교폭력으로 신고한 사례도 있어 ‘걸면 걸리는 게 학교폭력’이라는 말이 나온다. 학교 주변 파출소는 학폭 신고로 붐빈다고 한다. 지난해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개최 건수는 3만993건으로 2013년(1만7749건)에 비해 4년 만에 70%나 증가했다. 오죽하면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보다 학폭 처리가 중요해졌다”는 말이 나오겠는가.

학교폭력예방법은 2011년 같은 반 친구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던 대구 중학생이 자살한 사건 이후 대폭 강화됐다. 학폭위를 반드시 열도록 했고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강조했다. 학교폭력을 아이들 장난으로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에 경각심을 울리는 ‘극약처방’이었는데 수년간 시행되면서 학교가 가해자를 선도하고 피해자를 회복시키는 교육의 기능을 잃어버릴 정도가 됐다.

교사들은 학폭위를 한 번 열면 공문만 50, 60개를 작성해야 하고 피해·가해 학부모로부터 학폭 처리가 잘못됐다며 소송을 당하기 일쑤다. 징계 수위를 낮추려는 가해 학부모들도 절박하다. 학폭위에서 가장 가벼운 처분(서면사과)만 받아도 학교생활기록부에 ‘빨간 줄’이 남는다. 당장 고입, 대입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행정심판, 행정소송까지 불사한다. 이렇듯 학폭위에서 시시비비를 따지기 시작하면 피해자는 사과를 받을 수 없어 갈등이 증폭된다.

학교폭력은 뿌리 뽑아야 한다. 하지만 폭력을 예방하기는커녕 학교 현장의 갈등만 키우는 현행 제도는 개선해야 한다. 학폭 처리 과정에서 학교가 해야 할 일은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의 상처를 치유하고 재발을 막는 것이다.
#학교폭력예방법#학교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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