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고미석]‘영웅의 품격’ 존 매케인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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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10월 26일 베트남 하노이 인근에 미 해군 전투기 한 대가 격추된다. 양팔과 다리 하나가 부러진 채 호수로 추락한 조종사를 적군들이 끌어내 마구 때렸다. 그는 이후 학대와 고문으로 점철된 5년의 포로생활을 견뎌낸 끝에 석방됐지만 단 한 번도 자기 머리를 제 손으로 빗지 못했다. 평생을 시달린 부상 후유증 탓이다. 그가 바로 뇌종양으로 투병하다 25일(현지 시간) 타계한 존 매케인 공화당 상원의원이다.

▷매케인의 삶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본보기라고 할 만하다.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해군 제독을 지낸 명문가 출신의 ‘금수저’가 후방에 머물지 않고 전투의 최전선에서 싸웠다. 포로로 붙잡혔을 때 그의 아버지는 태평양사령관이었다. 북베트남이 협상용 카드로 그의 조기 석방을 제안했을 때 부자는 의연하게 거부했다. 당시 매케인은 석방 거절 이유를 이렇게 말했단다. 자신보다 앞서 붙잡힌 포로들이 먼저 석방된 뒤 나가겠다고. 매케인의 아들 역시 해군으로 복무하면서 이라크전에 참전해 가문의 전통을 이어갔다.

▷매케인은 1982년 공화당 하원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하면서 전쟁영웅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6선 상원의원을 지내는 동안 대선에 두 번 도전장을 냈으나 모두 쓴잔을 마셨다. 2000년 당내 경선에서 조지 W 부시에게 패했고 2008년 공화당 대선 후보로 나섰을 때는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에게 졌다. 보수 진영을 대표하는 아이콘이면서도 그는 정파적 이득을 따지기보다 옳다고 믿는 신념을 위해 종종 대통령에게든 당내 주류에게든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지난해 7월 뇌종양 수술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 상원에 출석해 동료들로부터 기립 박수를 받았다. 이때도 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해온 오바마케어 폐지방안에 당론과 어긋나게 반대표를 던졌다.

▷인간이 본디 갖춰야 할 덕목을 제시한 자신의 저서 ‘사람의 품격’의 제목처럼 매케인은 인간으로서 정치인으로서 올곧은 태도와 균형감각을 견지하고자 노력했다. 그가 여야를 넘어 원로 정객으로 초당적 존경을 받았던 까닭이다. 진정한 영웅, 진정한 보수의 가치를 일깨워준 위대한 미국인의 명복을 빈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횡설수설#존 매케인#사람의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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