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한진현]美-中 무역갈등 피해 불보듯… 기업-정부, 창의적 전략 절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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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현 한국무역협회 상근부회장
한진현 한국무역협회 상근부회장
1971년 5월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소니의 창업주 모리타 아키오를 표지 인물로 선정하면서 ‘일본의 비즈니스 침략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커버스토리를 작성했다. 1985년 일본이 대미 수출을 크게 늘리자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무차별적인 수입 규제로 맞대응했다. 3년 뒤인 1988년에는 ‘스페셜 301조’란 법을 만들어 일본에 무차별적인 통상압박을 가했다.

그때로부터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은 중국을 상대로 고율의 반덤핑·상계관세 부과, ‘통상법 301조’에 의한 지식재산권 침해 적발 및 800여 품목 관세 부과, ‘무역확장법 232조’를 통한 철강·알루미늄 관세 부과 등 관세폭탄을 퍼붓고 있다.

역사는 반복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미국 우선주의’와 ‘공정무역’을 내걸고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거침없이 밀어붙이고 있다. 1980년대에 미국이 일으켰던 통상분쟁과 다른 점이 있다면 압박 대상이 일본에서 중국으로 바뀌었다는 것 정도다.

미국 처지에서 당시의 일본과 지금의 중국은 많이 다르다. 첫째, 일본은 우방국일 뿐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으로 미국에 빚이 있었지만 중국은 한국전쟁의 적대국이었고 지금도 정치·군사적으로 경쟁하고 있다. 둘째, 현재의 미중 경제·무역 관계는 글로벌 가치사슬에 의해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다. 셋째, 트럼프의 미국은 ‘팍스 아메리카나’의 영광을 재연하고 싶지만 글로벌 경제에서 중국의 비중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미중 통상분쟁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미중 통상분쟁이 본격화하면서 한국의 처지를 ‘고래 싸움에 낀 새우’로 보는 시각이 많다. 미국이 중국 제품을 겨냥해 강화한 반덤핑·상계관세 절차법이 오히려 한국 기업들을 옥죄고, 통상법 301조에 근거한 대중(對中) 보복이 중국에 중간재를 공급하는 한국 기업들을 힘들게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1980년대에도 비슷하게 전개됐다. 미국이 일본을 견제하면서 ‘아시아의 호랑이’로 부상하던 한국도 미국발 통상압력의 사정권에 들어갔다. 당시 우리 기업들은 위기에 직면했지만 일본의 기세가 수그러들면서 기사회생했다.

갈수록 험악해지는 미중 관계 속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1980년대의 미일 관계와 달리 미중 관계는 한반도 정세와 맞물려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한반도에서의 헤게모니 경쟁과 미중 무역분쟁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우리 통상환경을 결정지을 것이다. 우리가 미중 분쟁을 거시적이고 종합적인 관점에서 대응해야 하는 이유다. 지난 수천 년간 중국은 우리에게 위기와 기회가 공존하는 이웃이었다. 지난 한 세대 동안 중국은 우리에게 유례없는 성장의 기회를 제공했지만 이제는 정치·경제의 주요 위협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중국은 맹렬한 속도로 추격하는 후발 주자에 머물지 않고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주요 2개국(G2)으로 성장했다. 우리는 미국과 중국이 힘껏 당기는 팽팽한 줄 위에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줄타기를 해야만 추락을 면할 운명이다.

일단 미국의 중국 인식에 주목해야 한다. 백악관은 중국의 강제 기술 이전과 지식재산권 침해를 ‘경제적 공격(economic aggression)’이라며 적개심을 드러냈다.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우리 기업과 정부가 한마음으로 창의적이면서도 스마트한 전략을 준비할 때 활로가 열릴 것이다.

한진현 한국무역협회 상근부회장
#미중 무역갈등#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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