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이슈/박민우]라마단의 밤은 낮보다 아름답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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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우 카이로 특파원
박민우 카이로 특파원
요즘 이집트의 밤거리는 특히 아름답다. 이슬람의 성월인 라마단 기간(5월 17일∼6월 14일)에 집집마다 알록달록한 종이 등불인 ‘파누스’를 밝히기 때문이다. 파누스는 이슬람이 무지의 세계에 빛을 가져다줬음을 상징한다고 한다. 카이로 마디에 자리한 기자의 집 현관에도 붉은빛 파누스가 불을 밝혔다.

라마단은 이슬람력의 9번째 달로 이슬람의 선지자 무함마드가 천사 지브릴(가브리엘)에게서 알라의 말씀인 꾸란을 전수받은 달이다. 무슬림들은 라마단 기간 해가 떠 있는 시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는다. 이는 이슬람의 5대 의무인 △신앙고백 △기도 △자선 △단식 △메카 순례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열사(熱沙)의 땅에서 한 달이나 금식을 한다는 건 말처럼 쉽지 않다. 지난주 카이로의 최고 기온은 섭씨 44도에 달했다. 물조차 마시지 못하는 무슬림들의 가게나 회사는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일반 기업들은 대부분 오후 2시면 일과를 마치고, 일부 상점은 야간에만 문을 연다. 인구의 90%인 무슬림들이 무더위에 기력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바깥 활동을 삼가기 때문에 낮 시간 이곳 거리는 한산하다. 인구 1950만 명이 밀집한 카이로 시내의 극심한 교통 체증도 사라진다.

조용히 잠들었던 도시는 해가 저물면 깨어난다. 무슬림들은 해가 지면 식구들과 함께 어느 때보다 풍성하게 ‘이프타르’ 음식을 먹는다. 이프타르는 금식을 끝내고 먹는 첫 번째 식사로, 라마단 기간 친척과 가까운 이웃을 초대해 함께 즐긴다.

라마단 기간에 금식을 하는 이유는 가난한 이들의 굶주림을 헤아리기 위해서다. 낮에 금식해 비축한 음식을 밤에 이웃과 함께 나누라는 뜻도 담겨 있다. 무슬림들은 라마단 기간에 스스로 인내심을 시험하고 신앙을 키운다. 매일 밤 이슬람 사원 주변에서는 이프타르 음식을 나눠준다. 음식은 보통 마을의 유지가 기부한 돈으로 마련하는데 그 양이 상당히 푸짐하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음식을 준비하는 이들이 대부분 여성이라는 점이다. 무슬림 여성들은 금식을 하면서 이프타르와 일출 전 마지막 식사 ‘수후르’까지 준비하느라 더 큰 희생을 강요당한다.

라마단은 자비와 평화, 축복의 달이지만 테러에 대한 불안감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지난해 5월 16일 라마단을 하루 앞두고 이집트 남부 미니아 지역에서 콥트 기독교 신자들이 탑승한 버스가 무장 괴한들의 총격을 받아 최소 29명이 사망했다. 이후 중동 지역은 물론이고 유럽과 서아시아 등에서 잔혹한 테러가 끊이질 않았다.

실제로 테러는 라마단 기간에 더 빈번하게 발생했다. 미국 메릴랜드대의 글로벌테러리즘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2006∼2015년 라마단 기간 하루 평균 발생한 테러 공격 건수와 사망한 사람의 수는 각각 15.4건, 39.4명으로 라마단 이외 기간 평균(14.6건, 33.8명)보다 많았다.

이집트 내에서도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최근 이슬람국가(IS) 선전 매체가 암호화 메신저 텔레그램을 통해 조만간 카이로의 성 조지 교회를 공격할 것이라고 예고했기 때문이다. 이집트 주재 한국대사관도 교민과 방문객에게 라마단 기간 신변 안전에 각별히 유의하라고 당부했다.

미국과 유럽도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다.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은 “라마단 기간 중 지하드(성전)는 신의 허락을 받은 행위”라며 IS를 추종하는 ‘외로운 늑대’(자생적 테러리스트)의 공격을 부추긴다. 특히 최근 미국이 이란 핵협정(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하고, 미국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한 행보가 테러의 명분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일부 이슬람 극단주의자의 분노와 적대감이 라마단의 취지를 훼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올해 라마단은 그 어떤 테러 소식 없이 평화로이 지나가길 소망한다.
 
박민우 카이로 특파원 minwoo@donga.com
#이집트#라마단#파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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