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시선/김진표]바늘 도둑이 소도둑… 불행의 씨앗, 사이버 도박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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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표 경찰청 사이버안전국장
김진표 경찰청 사이버안전국장
1970년대 이전에 유년기를 시골에서 보낸 사람이라면 소에 대한 추억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소는 농사를 돕는 든든한 가족이자 자식의 대학 진학이나 결혼의 밑천이 되어 주는 소중한 존재였다. 그래서 소를 팔아야 할 때 가족들은 으레 서운하고 슬펐다.

최악의 경우는 가장이 도박에 빠져 소까지 팔겠다고 끌고 갈 때였다. 소의 구슬픈 울음도, 가족들의 절규도 그에게는 들리지 않았을 터. 당시 심심찮게 도박으로 풍비박산한 가족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농촌 사회를 좀먹는 도박이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4차 산업혁명을 목도하고 있는 지금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많은 이들이 소중한 재산, 가족을 담보로 도박에 빠져 있다. 특히 사이버 도박이 문제다. 정보기술(IT) 발전으로 누구나 쉽게 사이버 도박장에 접근할 수 있어 일반 시민, 주부, 청소년들까지도 도박의 유혹에 노출되고 있다.

지난해 경찰의 사이버 도박 검거 건수는 총 9394건, 검거 인원은 1만3000여 명에 달한다. 2015년에 비해 2배 넘게 증가했다. 불법 사행산업에서 사이버 도박이 차지하는 비중도 증가 추세로, 앞으로 시장 규모가 계속 커질 것으로 보인다.

또한, 사이버 도박에 폭력조직이 가담하거나, 홍보 담당자를 따로 둘 정도로 조직화 기업화되었으며, 해외에 서버를 두고 회원제로 운영하는 등 법망을 피하는 수법 또한 교묘해지고 있다. 개인의 경제적 피해도 문제지만 땀과 노력의 가치를 폄하하는 한탕주의 만연이라는 사회적 손실과 IT 강국 대한민국의 이미지 훼손이라는 피해도 무시할 수 없다.

경찰은 사이버 도박 근절을 위해 노력해 왔다. 지난해에는 5대 사이버 범죄 특별단속을 통해 3조4000억 원 규모의 기업형 도박 사이트 운영 조직 등 도박 사범 5981명을 검거하고 범죄 수익금을 환수했다.

올해도 지난달 21일부터 사이버 도박 집중단속을 시작했다. 보다 효과적인 단속을 위해 기업형 도박 사이트 운영자들에게는 ‘범죄단체 조직죄’를 적용해 처벌 수위를 높이고, 해외에서도 단속을 피할 수 없도록 국제 공조를 확대할 예정이다. 하지만 사이버 도박 근절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신기루 같은 ‘한 방’을 꿈꾸며 도박장으로 모이는 사람들을 막을 사회적 안전장치다. 호기심으로 시작한 도박으로 ‘소’까지 팔아버리는 것은 막아야 하지 않을까. 이를 위해 사이버 도박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한탕주의를 배척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경찰,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등 유관기관이 협업하여 도박 사이트 삭제·차단, 예방 교육·홍보, 도박중독자 치료 등 다각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도박은 탐욕의 아들이며, 불행의 아버지’라는 프랑스 속담이 있다. 개인의 탐욕에서 시작된 불행이 사회의 불행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사이버 도박으로부터 서로를 보호하는 든든한 지킴이가 되어야 하겠다.

김진표 경찰청 사이버안전국장
#4차 산업혁명#도박#사이버 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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