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홍성규]한국 최고 엘리트, 의관부터 가다듬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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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규 채널A 사회부 차장
홍성규 채널A 사회부 차장
일반인들에게 검사와 판사, 변호사 등 법조인은 선망의 대상이다. 갖가지 민형사 사건을 도맡아 최종적으로 법정 심판에 맡기거나 중대한 결정을 내리는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역할에 따라 형사 사건에서는 사건 관련인의 생명권이 걸리고 민사 사건에서도 일생일대의 재산권이 좌우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법조인의 권한이 막대한 만큼 높은 도덕성을 요구받는 것은 당연하다. 대다수 시민은 지금의 사법 시스템에서 그들의 도덕성이 검증됐다고 믿고 있다. 이 역시 선망의 부수조건이다. 대다수 법조인도 그런 선망과 요구에 충실히 응한다. 특히 법조인을 취재할 때면 그런 면모를 확인할 때가 많다. 사무실에 찾아온 기자를 맞을 때 정중히 의관부터 갖추는 판검사들이 많다. 그런 자세부터 존경심을 불러일으키곤 했다.

그런데 요즘 법조인들을 보면 선망의 믿음에 금이 생기고 있음을 실감한다. 이번엔 오피스텔 성매매 부장판사까지 생겨났다. 더구나 우리나라 최고의 법원, 대법원 법원행정처 소속 부장판사라니. 법원행정처는 모든 판례를 관장하고 법관 인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최고 엘리트 판사들의 집합소다. 사법부 안에서도 ‘꽃 중의 꽃’으로 꼽히는 곳이다. 사법시험 성적이나 근무 성적이 낮은 판사들은 이곳을 구경도 못 하고 임기를 마친다. 법원장이나 차관급인 고등법원 부장판사에 오르는 법관들은 대부분 여기를 거쳐 간다. 그런 배경에서 ‘법원행정처 마피아’라는 시기에 찬 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런 엘리트 부장판사가 길거리에 뿌려진 전단에 눈이 끌려 성매매를 했단다. 2011년 ‘몰카’ 판사, 지난해 ‘여후배 성추행’ 판사에 이어 방탕의 극치다. 이 같은 사건은 사법 시스템에 대한 국민 불신을 자초할 수도 있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 주변에선 달갑지 않은 목격담이 종종 들려오기도 한다. 대형 로펌 변호사들이 저녁 술자리에서 만난 옆 테이블 판검사들의 술값을 대납한다는 얘기도 그중의 하나다. 인맥과 우연을 가장해 계획적으로 대납하는 경우도 있단다. 이를 마다하지 않는 판검사가 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비록 극소수일 테지만, 우려스럽다. 최근 사상 처음 현직 검사장이 구속되는 사태를 본 직후여서 우려가 더 크다.

이 사태는 이젠 검찰 자체 개혁도 믿지 못하게 만들어 놓았다. 진경준 검사장은 갖가지 의혹에도 거짓말을 거듭하다 결국 망신을 자초했다. 수사 대상 기업에서 일감을 받아내고, 친구에게 가족 해외여행권까지 부담시킨 혐의도 상상 이상이다. 1997년 의정부 법조비리, 1999년 대전 법조비리, 2005년 김홍수 법조비리는 비교도 안 될 만큼의 충격이다.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를 둘러싼 법조비리 사건도 가관이다.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가 연루됐고, 검사장 출신 변호사가 구속되기도 했다.

법조삼륜의 한 축인 대한변호사협회는 “사법제도가 탐욕의 수단으로 전락했다”며 법조인 비리를 뿌리 뽑자며 사법개혁을 부르짖고 있다. 국회도 사법개혁 카드를 만지고 있다. 법원 검찰의 자정 기능마저 의심받고 있는 셈이다.

사법부와 검찰이 내놓을 해결책은 별로 없다. 일벌백계와 뼈를 깎는 자정 노력이 우선 필요할 것이다. 그 출발점은 이미 벌어진 일을 누구의 의심도 받지 않게 공정하고 투명하게 수습하는 길이어야 한다. 학연, 지연, 인맥을 끊고 자정 노력을 보여야 한다. 최근 만난 한 고위 법관은 기자에게 “엘리트일수록 자가당착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고 털어놨다. 선망을 좇기에 앞서 의관부터 다시 가다듬을 때라는 각오와 함께.

홍성규 채널A 사회부 차장 hot@donga.com
#엘리트#법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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