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SNS에서는]맥락을 잃어버린 ‘퍼즐 기사’ 읽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13일 03시 00분


코멘트
“균형이 잘 잡힌 글입니다. 일독(一讀)을 권(勸)합니다.”(40대 직장인 A 씨)

“헐, 대박. 이것 좀 봐봐.”(20대 대학생 B 씨)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하는 사람은 누구나 SNS를 통해 기사를 읽거나 친구들과 공유합니다. 그럴 때는 비명에 가까운 감탄사나, 나름의 촌평을 한줄 붙이는 것도 잊지 않습니다. 혹은 모바일 메신저 단체 채팅창에 기사의 링크나 본문을 복사해 붙여 넣기도 합니다.

바야흐로 ‘전통적인 플랫폼을 떠나 개별 기사 단위로 뉴스가 소비되는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지면이나 TV 화면을 벗어난 기사들이 SNS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사람들에게 개별적으로 보여지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이렇게 뉴스를 소비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언론진흥재단이 지난해 말 내놓은 ‘2014 언론수용자 의식조사’에 따르면 SNS를 통해 뉴스를 이용하는 사람의 비중은 전체 응답자의 20.7%였습니다. 다섯 명 중 한 명꼴입니다. 3년 전(2011년·11.4%)에 비하면 꽤 늘었습니다.

SNS뿐만 아니라 인터넷 공간에서도 기사는 대개 개별 단위로 읽힙니다. 사람들은 포털사이트 또는 카페, 커뮤니티 등을 통해 자신에게 필요한 뉴스만을 찾아 읽습니다. 기사가 어느 언론사의 지면 혹은 홈페이지에 올라가 있느냐보다는 자신과 얼마나 관계가 있는가, 내가 얼마나 궁금해하는 문제인가가 더 중요한 시대가 된 겁니다.

이런 환경이 제대로 자리 잡으면 어떨까요. 기자들은 품질 높은 기사를 쓰기 위해 골몰하게 될 것이고, 독자들은 훌륭한 기사만을 보게 될 테니 퍽 좋아질 겁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함정이 하나 있습니다. 기사가 쪼개져 읽히는 과정에서 전체 사건의 맥락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왜곡 현상이 일어난다는 점입니다.

소설가 알랭 드 보통은 자신의 책 ‘뉴스의 시대’(문학동네·2014년)에서 맥락이 잘려나간 기사들을 미술작품 감상에 빗대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미술 작품에 비유하자면 최소 1m 이상 거리를 두고 감상해야 하는 그림을 1, 2mm 떨어진 지점에서 감상하라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도 말합니다. “독자를 긴 이야기 속 아무데나 빠뜨렸다가 다시 재빨리 꺼내면서도 사건이 전개돼온 더 넓은 맥락에 대한 설명을 제공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언론이 우리 사회에 넘쳐나는 중요한 사건들을 기사화할 때 상습적으로 벌이는 일이다.”

맥락을 잃어버린 기사는 좌표가 없는 배와 같습니다. 독자의 판단을 돕는 조력자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해내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이런 식으로 잘못 해석된 기사들이 SNS나 커뮤니티를 배회하는 모습을 한 번쯤은 목격하셨을 겁니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가 김기종 씨에게 습격을 당했을 때 미국 국무부의 첫 반응은 “폭력 행위를 강력히 규탄한다”였습니다. 이 같은 속보를 접한 누리꾼들의 반응은 한층 격해졌습니다. 포털사이트에는 ‘미친 사람 때문에 우리 외교 상황이 더 나빠지게 생겼다’ ‘미국을 테러한 것이나 다름없으니 김기종 씨를 미국으로 보내 처벌해야 한다’ 같은 댓글이 달렸습니다.

하지만 이후 여러 관계자의 입을 통해 미국이 김 씨의 행동을 폭력 행위로 규정한 것은 비난보다는 선 긋기에 가깝다는 이야기가 들려왔습니다. 미국이 김 씨의 행동을 테러로 규정할 경우 그에 상응하는 보복 조치를 해야 하는데 폭력 행위로 규정한 것은 오히려 수위를 낮춘 것에 가깝다는 설명이었죠.

명사 하나, 형용사 하나에 수위가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정치 언어’의 경우, 그에 대한 정확한 해석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속보에는 이런 해석이 빠져 있기 마련입니다. 누리꾼들은 이런 맥락과 흐름을 모른 채 ‘미국 정부가 분노하고 있다’고 단편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불필요한 오해도 생겨났고요.

드넓은 인터넷과 SNS 세상에는 퍼즐 조각의 모양을 흉내 낸 종잇장, 아예 틀린 그림이 그려진 퍼즐 조각이 많습니다. 이제는 그중 진짜 퍼즐을 찾아내고 이를 제대로 꿰어 맞추는 훈련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어쩌면 이런 퍼즐을 맞춰나가는 훈련 과정에서 독자들이 뉴스의 소비자인 동시에 생산자로 거듭나는 시대가 찾아올지도 모르겠습니다.

권기범 디지털퍼스트팀 기자 kaki@donga.com
#퍼즐 기사#SNS#개별 단위#맥락#뉴스의 시대#정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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