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로버트 파우저]사람이 살아야 도시가 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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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파우저 전 서울대 교수
로버트 파우저 전 서울대 교수
이달 10일 미국의 마이크 듀건 디트로이트 시장이 연두 정책 연설에서 주택에 대한 새로운 정책을 발표했다. 올해부터 지붕, 창문, 난방, 수도관 등 집의 기본 시설 수리를 위해 무이자 융자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총예산은 연간 800만 달러(약 88억 원). 건당 5000∼2만5000달러 범위 내에서 지원한다. 물론 집주인이 집에 살아야 되고 융자를 갚을 능력도 있어야 된다.

얼핏 보면 지원 규모가 그리 크지도 않고 혁신적인 정책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몇 년 사이에 살 수 없는 집 철거만 열심히 했던 디트로이트의 역사적 맥락에서 보면 의미가 크다. 2013년 재정난으로 파산보호 신청을 했던 디트로이트 시는 2014년 말에 겨우 법정관리에서 벗어났지만 재정이 여전히 어렵다. 그런 가운데 도입한 이번 정책은 일단 도시는 사람이 살아야 회복된다는 생각을 반영한다.

디트로이트는 2010년도 국가 인구조사에서 시 인구가 2000년보다 25% 감소한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러자 주민 이동을 유도해 관리 면적을 축소하는 정책을 도입했다. 사람이 살았던 곳에는 도시 농업을 도입하려 했다. 도시 농업이 매력적인 말이지만 주민의 이동을 유도하기 어려운 데다 축소는 회복의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이었다. 디트로이트 인구가 정점이던 1950년에는 185만 명이었는데 그 정도로 회복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젊은 세대가 도시적 분위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환경이 좋아지면 현재의 70만 명보다 늘어날 가능성은 있다. 축소 정책은 결국 미래를 포기하는 것이다.

지도를 보면 디트로이트가 한국에서 아주 멀지만 빈집 문제 및 집 유지 문제는 한국 도시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 한국은 대도시 도심을 재개발하려다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부동산시장이 침체되면서 아파트 수요가 둔화돼 재개발 산업이 많이 무산됐다. 한국 대도시, 특히 중심지에는 오랫동안 유지, 보수가 되지 않은 지역이 많고 그런 낙후된 지역에 고령자 또는 저소득층이 살게 됐다. 한국 도심에는 디트로이트와 마찬가지로 집이 철거된 빈 터, 살 수 없을 만큼 오래된 집, 살 수 있는 빈집, 고칠 만한 집, 그리고 유지가 잘된 문제없는 집이 섞여 있다. 지역마다 이 비율이 조금씩 다르지만 중요한 것은 집 상태가 다양해서 정책적으로 일관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렇게 복잡한 문제에 정책적으로 대응하려면 도시가 전체적으로 활기를 회복하도록 지원해야 된다. 유명한 도시평론가인 제인 제이컵스(1916∼2006)는 1961년에 출간한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에서 도시의 건강 및 활기는 다양성에서 나온다며 다양성의 필수조건을 네 가지로 제시했다. ‘복합 용도’ ‘짧은 블록’ ‘다양한 건물’, 그리고 ‘높은 인구밀도’였다.

이렇게 보면 한국 대도시의 낙후된 지역은 이 조건을 대체로 충족하고 있지만 이 중 가장 큰 문제는 다양한 건물이다. 다양한 건물이라는 것은 여러 요구에 맞는 건물이 있어야 한 지역에서 다양한 활동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택만 놓고 봐도 대가족이 살 수 있는 큰 주택이 필요한 반면에 독신이나 부부만을 위한 작은 주택도 필요하다. 그리고 여러 사회 계층이 같은 지역에 공존할 수 있게 주택 형태, 면적, 가격 등이 다양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시설이 좋고 말끔한 사업장이 필요한 반면에 시설이 낡았지만 임대료가 저렴한 사업장도 필요하다.

그래서 한국 대도시의 중요한 과제 중 하나가 다양한 건물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디트로이트처럼 고칠 만한 집을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 지방자치단체 중에 이미 그런 지원정책을 시행하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은 특정 지역에만 지원된다. 이것은 불공평하므로 복지를 확대하는 차원에서 시 전체를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이미 철거했거나 고칠 수 없는 집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다. 이곳들도 주차장이나 농장으로 활용하기보다 사람이 살면서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의 변화가 필요하다. 철거는 쉽고 저렴한 단기적 해결책이지만 디트로이트가 깨달았듯이 미래를 포기하는 것이다. 이제는 돈이 드는 정책을 도입해 미래를 위해서 투자할 때다.

로버트 파우저 전 서울대 교수
#마이크 듀건#디트로이트 시#인구밀도#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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