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건보료 백지화’에 職을 걸고 반대하는 공직자 왜 없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3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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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건강보험료 개편 논의가 중단된 것에 항의해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선 기획단’의 이규식 위원장(연세대 명예교수)이 어제 사퇴 의사를 밝혔다. 이 위원장은 “기획단이 1년 6개월에 걸쳐 개편 방안을 논의했는데도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했다는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의 설명은 무책임한 변명에 불과하다”며 “현 정부에서 개선 의지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사퇴 이유를 밝혔다.

건강보험료 개혁은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설정한 중요 국정과제 중 하나다. 건강보험과 관련된 학계 노동계 등 16명으로 구성된 기획단은 2013년 7월 출범한 이후 지난해 9월까지 전체 회의를 11차례 개최하면서 건보료 개선 방향을 논의해왔다. 기획단이 마지막 회의를 마친 뒤 ‘직장과 지역 가입자 모두 근로소득과 사업소득 이외에 매년 2000만 원이 넘는 금융 소득에 대해서도 건보료를 매기는 방안’을 내놓은 것은 옳은 방향으로 평가받았다.

이 위원장의 소신 있는 사퇴와는 달리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 장관의 처신은 실망스럽다. 문 장관은 백지화 발표 전날 기자들에게 “겨우 기획단 안을 만들어 냈는데 이번 기회를 놓치면 몇 년을 기다려야 한다”고 밝혀 놓고는 하루 만에 “올해 안에는 개선안을 내놓지 않겠다”고 말을 바꿨다. 연말정산 파동의 후폭풍이 심상치 않자 건보료 개혁에 대해서도 일부 반발이 따를 것으로 예상하고 물러선 것으로 풀이된다. 정치적 계산에 따른 정책 후퇴였다. 문 장관의 선언이 나온 뒤 곧바로 박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다. 2013년 기초연금 논란이 빚어졌을 때 당시 진영 복지부 장관은 소득기준 차등지급 소신을 굽히지 않고 사표를 낸 것과 비교된다.

원칙 없는 후퇴라는 비판이 쏟아지자 청와대는 “백지화는 아니다”라며 직접 진화에 나섰다. 소신 있는 공직자라면 청와대의 눈치만 살피지 말고 “장관직을 걸고 국민을 설득하겠다”고 발 벗고 나서야 했던 것 아닌가. 무소신 무책임의 전형을 보여준 문 장관의 사퇴를 촉구한 야당 주장에 많은 이가 공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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