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윤회 문건이 민생법안 처리 막는 이유 될 수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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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국회 종료일을 하루 앞둔 어제 여야가 국회 본회의를 열어 각종 민생 법안을 처리할 계획이었으나 무산됐다. 여야 간에 ‘정윤회 문건’을 둘러싼 정치 공방이 격화되었기 때문이다. 12년 만에 예산안을 법정기한(12월 2일) 내에 처리했다며 큰일이나 해낸 듯이 생색을 내던 여야가 정윤회 문건을 기화로 구태를 드러낸 것이다. 오늘 본회의가 열린다 해도 300여 건의 계류 법안들을 회기내에 처리하겠다던 당초 다짐은 차질을 빚을 공산이 크다.

어제 새정치민주연합은 박근혜 대통령이 여당 지도부와의 회동에서 ‘비선 실세 국정개입 의혹’을 “찌라시에나 나오는 이야기들”로 일축한 데 반발하며 정윤회 씨와 청와대 비서관 등 12명을 검찰에 고발 또는 수사 의뢰했다. 박 대통령이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의 보고 문건으로까지 작성된 비선 실세의 국정개입 의혹을 ‘찌라시’로 규정하는 태도는 적절치 못하다. 그렇다고 해서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이번 사건에 대해 정치권이 다시 고발장을 낸 것은 정략적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 국회가 정치공방의 소모전을 되풀이해서는 곤란하다.

시급한 민생 법안들도 줄줄이 처리가 미뤄지고 있다. 여야 간에 이견이 없는 수능 출제오류 피해자 구제법과 ‘송파 세 모녀 법’으로 불리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 등이 대표적이다. 공무원연금 개혁법안과 경제 활성화, 부동산 활성화 법안 등의 회기 내 처리는 사실상 어려워졌다. 15일부터 열리는 12월 임시국회에서도 정윤회 문건 관련 긴급현안 질의로 여야가 가파르게 대치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다가 법안 처리의 ‘골든타임’을 놓쳐서는 안 된다. 새누리당이 말로는 법안 처리의 시급성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속도를 내지 못하는 것은 야당의 비선실세 공세를 늦추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 국회 법안 처리를 시간이 남으면 하는 것 정도로 여기는 정치권의 풍토야말로 혁신 대상이다.

내년 정부 예산안을 처리하자마자 정의화 국회의장을 비롯한 60여 명의 국회의원이 앞다투어 해외로 나갈 움직임이다. 12월에 출국 예정인 의원들의 해외출장 가운데는 임시국회와 일정이 겹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올해가 가기 전에 배정된 예산을 써버리려는 꼼수는 여야 가릴 것 없이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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