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 일자리가 없으니 심야行… 수입 좋고 구하기도 쉬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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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 알바 톡톡] 생체리듬 깨지고 인간관계 깨지고… 나만 거꾸로 가나 불안

《 24시간 편의점만 심야영업을 하는 게 아닙니다. 언제부터인가 밤을 잊은 영업장은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됐습니다. 밤 12시가 넘어 카페를 가고, 영화를 보며, 늦은 운동을 하지요. 외국인 관광객에게는 한국의 심야 쇼핑만큼 이색적인 게 없습니다. 그들은 밤새 문을 여는 한국의 영업 스타일에 ‘찬사’를 보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심야문화는 밤을 하얗게 밝히는 심야 아르바이트생들의 노동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지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심야 아르바이트 전선으로 뛰어들고 있습니다. 주간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한 것도 중요한 이유일 겁니다. ‘올빼미’들에게도 남다른 고충이 많습니다. 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용돈-등록금 내 손으로 벌어야죠”

―유학 자금을 모으기 위해 휴학한 뒤 일하고 있다. 오후 4시부터 9시 반까지는 레스토랑에서 주방 보조로, 오후 10시부터 다음 날 오전 8시까지는 편의점에서 일을 한다. 유학비를 달라고 집에 손을 벌리기가 좀 그렇다. 하루에 15시간 반을 일만 하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이 정도 고생은 참을 수 있다.(24·휴학생·편의점 근무)

―월, 화, 수요일은 남들처럼 학교에 다닌다. 그러고 강의 시간표를 조정해서 목, 금, 토, 일요일은 심야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고등학교 때부터 알바를 하면서 용돈을 벌었다. 힘들지만 돈이 필요하니까 일을 할 수밖에 없는데, 기왕이면 시급이 센 심야 알바가 낫지 않겠는가.(20·대학생·패스트푸드점 근무)

―대학 등록금을 부모님이 내주시는데 용돈까지 받아쓰기는 미안하다. 그래서 심야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똑같은 일을 해도 주간이랑 야간에 시급이 2000원 이상 차이가 나니까 심야알바를 선택했다. 하루 단위로 치면 2만 원이나 차이가 난다.(26·여·대학생·액세서리점 근무)

―야간 아르바이트 자리가 주간보다 구하기 쉽다. 사람이 금방금방 빠지니까. 나도 알바 자리를 찾다가 잡히는 대로 시작하다 보니 야간 알바를 하게 됐다. 심야 알바의 유일한 장점이라면 개인 시간이 많다는 거다. 새벽에는 주간보다 손님이 적으니까 내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취업 준비 중이라 새벽에 짬을 내서 책을 본다.(23·취업준비생·멀티방 근무)

―시간을 잘만 활용하면 밤에 내 일을 할 수 있다. 오전 2시가 넘어가면 손님이 뜸하다. 전공이 디자인인데, 일할 때는 컴퓨터를 못 하니까 대충 메모해두고 집에 가서 컴퓨터로 옮긴다.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쓴다.(23·대학생·옷가게 근무)

―낮에는 내가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한다. 그래서 일부러 심야 아르바이트를 선택했다. 밤에 일하고 낮에는 시간을 내 자기계발에 투자한다. 운전면허도 따고 캘리그래피 같은 취미생활도 여유롭게 할 수 있어 좋다.(21·여·애견용품점 근무)

“일자리 없고 나이 들고, 밤에라도 일해야”

―나이가 많으니까 일할 데가 없다. 지금 내가 낮에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나. 이렇게 일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다. 심야에 일을 하려는 사람이 얼마 없으니까 심야 일자리는 상대적으로 구하기가 쉽다. 그러니 나 같은 늙은이도 시켜주는 거지. 마음 같아서는 70세까지는 이 일을 계속하고 싶다.(65·당구장 근무)

―야간에만 일을 한 지 15년째다. 야간에 일하면 사장님이 자리에 없으니까 눈치 안 봐도 되고, 손님도 별로 없으니까 개인 시간이 많아서 좋다. 나는 남들처럼 평탄하게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지금이라도 열심히 살려고 밤에라도 일을 한다.(42·PC방 근무)

―낮에 일거리가 있다면 그 일을 할 것이다. 하지만 고정적인 일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밤에 고정적으로 편의점 알바를 한다. 오후 10시부터 다음 날 오전 9시까지 일하는 데, 일단은 급한 불을 껐다는 심정이다.(40·편의점 근무)

―한평생 일만 했다. 외환위기 터지고 나서는 저녁에 문을 여는 호프집 주방 일을 시작했다. 10년도 훨씬 넘게 밤에만 일을 하다 보니 낮엔 일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또 이 나이에 어디 가서 일을 구하겠나.(70·여·호프집 근무)

―누가 밤에 일을 하고 싶겠는가. 낮에 일할 데가 없으니 어쩔 수 없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 낮에 할 만한 자리는 금세 차버린다. 험한 일밖에 남아있지 않은데 그건 하기 싫다. 차라리 밤에라도 일자리가 있는 게 다행이다.(53·여·식당 근무)

“뒤바뀐 낮과 밤… 골병들까 걱정”

―몇 달 전부터 생리를 안 한다. 병원에서는 밤에 일하고 잠도 잘 못자니까 호르몬이 다 깨졌다고 하더라. 그래서 요즘은 병원 다니면서 호르몬 주사까지 맞고 있다. 아직 나이도 어린데 남들 잘 때 일하다가 골병드는 게 아닌가 걱정이다.(21·여·애견용품점 근무)

―잠을 못 자서 피곤한 건 당연하고 밥 먹기가 애매하다. 새벽에 일을 하면 출출하다. 그래서 뭘 좀 챙겨먹으면 배가 불러서 손님이 없을 때 자려고 해도 잠이 잘 안 온다. 또 새벽에는 배달되는 데도 별로 없고. 빵이나 라면을 주로 먹는데 건강에 좋을 리가 없다.(33·DVD방 근무)

―생체리듬이 깨지진 않는다. 밤에 잠을 못 자는 거야 적응하면 얼마든지 괜찮다. 대신 대인관계가 깨진다. 다른 사람들하고 생활 패턴이 다른데 사회생활이 제대로 될 수 있겠는가. 여자친구를 만들 시간도 없다. 결혼은커녕 연애도 내게는 아주 먼 얘기다.(38·PC방 근무)

―주말에 심야알바를 한다. 주중에는 뒤집힌 밤낮 바꾸는데, 3일 정도 걸린다. 수요일까지는 힘들다. 이제 좀 적응했다 싶으면 금요일이니까 또 출근하고. 그래도 지금은 이 선택밖에 없다.(26·여·대학생·액세서리점 근무)

―아기가 아직 돌도 안 됐다. 아기랑 많이 놀아주고 싶은데 볼 시간이 없다. 낮에는 자고 밤에는 일을 하니까. 그래서 새벽에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면 애기가 깨는 8시까지 기다렸다가 조금 놀아준다. 잠은 조금 덜 자도 내 새끼 보는 시간이니까.(31·가방가게 근무)

“아침에 출근하는 사람들 부러워”

―야간에 일하는 사람들 중에 피해의식, 자격지심 있는 사람이 많다. 남들 자는 시간에 일하고, 남들 일하는 시간에 집에 들어가니까. 게다가 괜한 자격지심에 밤에 일한다는 걸 드러내기 꺼린다.(38·PC방 근무)

―가끔 내 미래가 궁금하다. 나중에 뭘 하고 있을지. 학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하던 선배들 중에 좋은 데 취직하는 사람을 못 봤다. 나도 그럴까 봐 걱정이다. 그렇다고 일을 안 할 수도 없고….(20·대학생·패스트푸드점 근무)

―새벽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소외감이 있다. 내가 퇴근할 때, 나와는 반대로 출근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외로움이나 공허함 같은 게 자연스럽게 생긴다. 나만 혼자 잘못된 길을 가고 있지는 않은가 하고….(37·DVD방 근무)

―심야 알바를 마치고 퇴근하다 술을 한잔할 때가 있는데, 그때 기분이 참 그렇다. 내가 이렇게 사는 게 맞는지, 이렇게까지 일을 해야 하는 건지 고민한다. 그럴 때면 정말 씁쓸하다. 해 뜨고 밖은 밝아지고. 다들 출근하느라 바쁘게 움직이는데 나는 술에 취해 있으니까.(33·가방가게 근무)

―오후 10시부터 다음 날 오전 7시까지 프런트에 서 있으면 외로울 때가 있다. 하지만 외로울 여유도 없다. 마감도 해야 하고, 예약확인서나 요청사항 같은 걸 정리하다 보면 시간이 빠듯할 정도다. 여유가 있는 삶이 부럽다.(33·비즈니스호텔 프런트 근무)

―최근 드라마 ‘미생’을 봤는데, 거기서도 주인공이 심야 알바를 하더라. 주인공도 아침에 퇴근을 하면서 출근하는 직장인들을 보고 쓸쓸함을 느끼던데, 지금 내 심정이 딱 그렇다. 이 생활에 적응한 것 같은데도, 출근하는 직장인에게 눈길이 가는 건 왜일까.(35·찜질방 프런트 근무)

“나의 밤은 그래도 아름답다”

―평일엔 평범한 회사원이다. 지인이 운영하는 곳인데 소개를 받아 금, 토요일만 심야에 일을 하고 있다. 최종 목표가 내 가게를 여는 건데 그러기 위해선 심야 알바를 해서라도 돈을 모아야 한다. 젊을 때 바짝 벌어야 나중에 작은 가게라도 열 수 있지 않을까.(27·여·회사원·옷가게 근무)

―집이 안산인데 일 끝나고 동대문에서 경기 안산까지 가려면 오래 걸린다. 오전 5시에 퇴근하니까 출근하는 사람보다는 밤새도록 클럽에서 놀다가 집에 가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그런 사람들 보면 ‘나도 스무 살 때는 그랬는데 지금은 철이 좀이 든 것 같다’고 생각하며 뿌듯해한다.(23·대학생·옷가게 근무)

―오전 5시에 퇴근한다. 해도 뜨기 전이라 어둑어둑하지만 차가운 새벽 공기가 상쾌하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은 자고 있을 시간에 나는 뭔가 했다는 성취감이 있다. 학교 기숙사에 돌아가면 오전에 계속 자는 친구들도 있다. 개인적으로 더 부지런해지고 시간을 잘 쓰게 되는 것 같다.(21·여·대학생·팬시점 근무)

―처음에는 싱숭생숭할 때가 있긴 했다. 지금은 내가 놀다가 집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밤새 일을 하고 퇴근을 하는 거니까 오히려 열심히 살고 있는 것 같아 자랑스럽다. 누군가는 밤에 일을 해야 하고, 그게 지금은 나인 것이다. 내게는 꿈이 있고, 그래서 즐거운 마음으로 하고 있다.(24·휴학생·쇼핑몰 보안업체 근무)

―밤 풍경도 낮과 크게 다르진 않다. 낮에 나오는 게 불가능한 사람들이 밤에 나올 뿐이니까. 우리나라는 치안이 좋으니까 밤에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고, 그러니까 상권도 발전할 수 있는 거다. 밤 문화도 이제 ‘문화’다.(26·여·대학생·액세서리점 근무)

오피니언팀 종합·도혜민 인턴기자 경북대 국어국문학과 4학년
#심야#알바#야간#일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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