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배영]이동통신업체 독과점부터 풀어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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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 숭실대 교수·정보사회학
배영 숭실대 교수·정보사회학
세월호 사건으로 들끓던 4월 30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미방위)는 88분 동안 132개 안건을 일괄 처리했다. 거기에는 이동통신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단통법)이 끼어 있었다. 단통법을 발의한 조해진 의원도, 미방위 위원들도 그 법안이 초래할 후폭풍을 예견하지 못했다. 다만 ‘통신비 인하’라는 대선 공약이 압박감으로 작용했을 뿐이다.

단통법이 발효된 10월 1일 이후 불과 20일도 채 못돼 그 법에 감춰진 패악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통신비 부담이 급증한 것은 물론이고 세계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는 국내 휴대전화가 중국산 샤오미 폰에 밀려 멸종 위기에 몰렸다. 이게 대통령이 원하던 바일까? 이게 국회가 진정 원하던 바일까? 소비자와 국내 기업의 어깨를 짓누른 이 어이없는 입법은 이적행위와 다름없다.

사실 단통법 시행에 대한 우려는 올 초부터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제기되었다. 휴대전화 가입자 5600만 명, 인터넷 사용자 비율과 평균 이용 시간이 세계 최고인 나라에서 통신 비용을 바꾸는 법안이라면 예상 효력에 대한 치밀하고도 신중한 검토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런 사정은 다른 법안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미방위 위원들은 ‘창조과학’과 ‘방송통신’이라는 최첨단 분야의 핵심 쟁점을 마치 1970년대 주판알 튀기듯 다루었다는 얘기다. 소비시장의 역습은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신규 가입 중단, 그리고 저가폰으로 전격 이동. 그것도 미래창조의 주력 부대인 젊은층에서 일어난 사태이기에 단통법은 미래 출구를 ‘단절하는 통신법’이라 부를 만하다.

정말 어이없게도, 단통법은 단말기 보조금 적용에 상한선을 둬야 소비자에 대한 차별적 수혜가 없어질 것이라고 전제했다. 보조금 상한선을 30만 원으로 규제해서 고객 유치를 위한 이통사 간 치열한 경쟁을 ‘요금 인하 경쟁’으로 유도하려 했던 것이다. 단말기 보조금을 줄이면 통신비 인하 경쟁이 저절로 일어난다? 이 전제야말로 구석기시대의 경제학이었다.

예전에는 80만 원짜리 프리미엄폰을 거의 공짜로 구입했던 소비자들은 이제 50만 원을 지불해야 한다. 편의점 시급 5000원인 청년들에게는 100시간 알바에 해당하는 거액이다. 보조금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노인층과의 차별적 수혜는 없어졌을지 몰라도 통신비 부담은 모두가 늘어난 아이러니가 발생한 것이다. 시장이 얼어붙은 것은 당연한 이치. 신규 가입과 휴대전화 판매가 급감해서 소매 유통업자들이 문을 닫고, 대신 인터넷 구매를 통한 중국산 스마트폰의 국내 유입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단통법의 가정은 이미 심각한 오류로 판정되었다. 통신요금 인하는 요금 인가 제도의 전면적 개선에서 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 1991년에 시작된 통신 요금 인가제는 후발 업체의 시장 진입 장벽을 낮춰주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 통신시장의 지배적 사업자가 요금 인상이나 신규 요금제를 시도할 때 정부의 사전 인가를 받도록 하여 후발 사업자가 다소 낮은 가격으로 경쟁할 수 있도록 배려한 정책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3개 업체만이 독과점 형태로 남게 된 상황에서 요금 인가 제도는 오히려 가격 담합의 여지를 허용한다. 23년이라는 기간 동안 3개 사업자가 독과점 위치를 분할 점령한 만큼 이제는 본격적인 통신요금 인하 경쟁을 유도하는 게 소비자를 위한 최선의 정책이다. 단통법이 꾀한 보조금 규제는 요금 인하 경쟁이 아니다.

단통법이 몰고 온 이 엄청난 부작용을 국회도, 정부의 해당 부처도 왜 사전에 예상하지 못했는가. 통신비 인하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는 국민 복지 증진을 위해 시급한 사안이다. 가계 월평균 통신비가 30만 원에 육박하는 현실이 그 절박성을 말해준다. 새로운 제도의 성패는 정부 신뢰와 직접 맞닿아 있기에 다각적인 방법으로 시뮬레이션을 실시했어야 했다. 사정이 악화되자 이달 17일 아침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은 관계 업체 대표들과 간담회를 열어 특단의 대책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는데, ‘단말기 가격 인하’ 같은 시장 경쟁과는 사뭇 다른 대안을 언급해 또 다른 우려를 자아냈다. 단말기 가격 인하는 시장이 알아서 할 일이다. 통신비 인하 정책은 디지털 환경에 대한 젊은층의 지배능력을 배가시키는 시대적 과제를 동시에 충족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동통신업체의 독과점 구조 혁파가 우선이다.

배영 숭실대 교수·정보사회학
#단통법#통신비 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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