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희균]‘반데렐라’ 컴백 모임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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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균 정책사회부 차장
김희균 정책사회부 차장
출근길에 지나치는 사거리가 며칠 전부터 다시 시끌벅적해졌다. 횡단보도 앞에서 교통정리 깃발을 든 엄마들 사이로 아이들이 재잘대며 뛰어간다. 동네 초등학교 개학과 함께 돌아온 풍경이다.

방학 동안 자녀들을 끼고 지내던 엄마들은 한숨 돌리게 됐다며 희색이다. 초등생 자녀를 둔 전업주부 사이의 유행어인 반데렐라(12시면 돌아가야 하는 신데렐라처럼 반나절 뒤면 하교하는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하는 엄마들을 빗댄 말)로 돌아온 것을 기념해 커피 한잔 나누는 여유를 맛본다.

‘반데렐라 컴백 모임’의 대화는 이런 흐름을 탄다.

먼저 방학 동안 아이가 해가 중천에 뜨도록 잠을 자며, TV 예능 프로그램에 넋을 잃고, 엄마 스마트폰을 몰래 들고 가 게임을 하는 통에 속이 터지더라는 하소연이 오간다. “아예 텔레비전 속으로 들어가라고 애 등을 막 밀었잖아.” “제가 그냥 2G폰으로 돌아가려고요.” 이런 말이 오가면 까르르 웃음이 터진다.

자연스레 방학숙제 얘기로 넘어갈 때만 해도 화기애애하다. 예나 지금이나 일기 밀린 얘기는 단골 소재이고, 만들기 숙제 재료가 너무 비싸다거나 체험학습 참가 경쟁이 치열하다는 푸념도 나온다.

슬슬 대화가 공부 문제로 이어지면 살짝 긴장감이 돈다. 학년마다 공부 많이 시키기로 유명한 엄마 몇몇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A 엄마는 스토리텔링 수학 문제집은 뭘 시키고, 창의력 수학 문제집은 뭘 시키고, 논리 수학 문제집은 뭘 시켰다더라”란 말이 나오면 다들 귀를 쫑긋 세운다. “B 엄마가 방학 때 애를 대치동 학원에 데리고 다니더니 강남으로 이사 갈 준비를 한다더라”란 말이 나오면 조금 숙연해진다. “C 엄마가 방학 동안 아이랑 필리핀에 어학연수를 갔는데 거기에서도 수학 과외를 했다더라”는 말이 나오면 곳곳에서 한숨 소리가 난다.

이런 대화는 학교 앞에 아이를 데리러 갈 때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집에 돌아오면 아이는 또 TV나 스마트폰을 찾기 십상이다. 내심 ‘나만 애를 너무 놀렸나’ 하는 생각에 불안하던 엄마의 마음은 TV 앞에 앉은 아이의 뒤통수에 냅다 소리를 지르거나, 학원 정보를 찾아 분노의 검색질을 하는 행동으로 표출된다.

방학식 직전에 학교에서 성적표를 받은 아이들은 개학식 직후 엄마로부터 또 다른 성적표를 받게 된다. 엄마표 성적표의 상당수는 ‘방학 때 너무 놀았으므로 2학기 때 바짝 해야 함’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한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의 말씀을 들어 보니 평소 공부에 극성스럽지 않던 엄마들도 유독 2학기 초반에 ‘학원 뺑뺑이’를 돌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공부를 쉬라는 뜻의 방학(放學)일진대 마음껏 놀지 못하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안쓰럽다. 그렇다고 해서 조기교육과 선행학습에 둘러싸인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 호기롭게 내 아이에게만 “아무렴, 방학은 실컷 놀아야지”라고 말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면 다음 방학 때는 이런 대안을 곁들여보면 어떨까. 얼마 전 인터넷에 올라와 화제가 됐던 방학 숙제를 살짝 차용하는 것이다.

강원도의 한 중학교 숙제라고 알려진 ‘도전 20, 여름방학 보내기’에는 땅의 흙을 맨발로 밟아보기, 해 지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기, 숲에서 나무를 껴안아 보고 나무와 이야기하기, 높은 곳에 올라가 마음껏 소리 지르기,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하기, 소나기를 그대로 맞아보고 비를 맞는 주변 사물 관찰하기 같은 낭만적인 과제가 20개 담겨 있다. 가족이 함께 해본다면 더 즐거울 것 같다. “아빠 엄마는 방학도 없는데 너는 좋겠다”라고 너스레도 좀 떨면서 말이다.

김희균 정책사회부 차장 for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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