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황우여의 수능 영어 절대평가, 글로벌 시대 거꾸로 가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29일 03시 00분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영어 과목이 현재의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 방식으로 전환될 예정이다. 그제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큰 방향은 잡혀 있다”고 말해 언제 도입하느냐의 문제만 남아 있음을 시사했다. 도입 시점은 현 중학교 3학년이 치르게 되는 2018학년도 수능시험부터가 유력하다.

이번 조치는 사교육비 경감 효과를 노린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2월 “사교육비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영어 사교육의 부담을 대폭 경감해야 한다”고 교육부에 주문했다. 절대평가를 하면 수능의 최고 등급인 1등급을 받는 학생이 대폭 늘어난다. 수험생들이 이전처럼 영어 공부에 매달리지 않아도 되므로 사교육비도 줄어들 것이라는 게 정부 판단인 모양이다.

근시안적이고 실효성도 의문스러운 방침이다. 입시에서 영어의 변별력이 떨어지면 국어 수학 같은 과목의 사교육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한양대가 고교생 학부모 교사 등 102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수능 영어의 절대평가에 대해 응답자 60%는 “사교육 감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수능은 1994학년도에 도입된 이후 줄곧 상대평가를 유지해 왔으나 이번 조치로 교육부는 스스로 수능 체제의 근간을 흔들었다. 대입 준비가 급선무인 일선 고교에선 영어 수업의 비중을 줄이면서 수학과 국어를 집중적으로 가르칠 공산도 크다. 수능 체제를 바꿀 필요가 있으면 전체적인 틀을 다뤄야지 땜질 대응을 하면 부작용만 키울 뿐이다.

정부가 사교육비를 줄일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더 위험하다. 나머지 수능 과목까지 절대평가를 하면 사교육비를 더 많이 줄일 수 있을지 모른다. 극단 좌파의 주장대로 아예 대학입시를 폐지하면 대학 진학을 위한 사교육비는 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인적 자원이 거의 유일한 자산인 나라에서 엘리트 양성 교육을 포기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교육당국의 일차적 임무는 학생들의 학력 수준을 끌어올리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글로벌 시대에 영어 교육은 무시해도 되는 대상이 결코 아니다. 정부는 이번 조치를 철회하고 충분한 시간을 갖고 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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