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현진]‘그들만의 리그’의 명암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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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진 소비자경제부 차장
박현진
소비자경제부 차장
미국 프로야구 뉴욕 양키스의 수호신으로 불렸던 마무리 투수 마리아노 리베라가 5월 자서전 ‘클로저(Closer)’를 냈다. 유명세에 걸맞게 미 현지의 반스앤드노블 등 대형 서점과 뉴욕 맨해튼 곳곳에서 출판기념회가 이어졌다. 눈길을 끈 것은 뉴저지 주 한 소도시의 동네 서점에서 열린 행사였다. 매주 이런 이벤트가 열리다 보니 주민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사랑방’이 된 듯했다. 인근에 대형서점 체인이 있었지만 허름한 이곳이 더 인기였다.

반스앤드노블과 아마존이 온·오프라인에서 몸집을 불리는 사이 2위 대형 서적체인인 보더스가 문을 닫아야 했다. 위협을 느낀 동네 서점 주인은 생존을 위해 저자와의 만남을 기획했다. 저자들은 마케팅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섭외 요청에 처음에는 꿈적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서점 주인이 어렵게 내디딘 발걸음이 쌓여 이제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다. 이렇게 자신만의 색깔로 ‘골리앗과 맞서는 다윗’을 미 도시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뉴욕 특파원 시절의 개인적인 경험을 떠올리게 한 출발점은 막걸리였다. 2011년 7월 한국을 떠날 때만 해도 막걸리 시장은 르네상스를 구가하고 있었지만 3년 만에 접한 시장은 딴판이었다. 맥주와 소주, 와인은 매년 신장세를 이어갔지만 막걸리만 소비량이 급감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막걸리 업체들이 소비자들의 기호에 맞추는 노력을 게을리 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 같다. 일부 중소 막걸리 업체는 2011년 9월 도입된 중소기업 적합업종에 막걸리가 지정된 것에서 원인을 찾고 있다. 인위적으로 대기업과의 경쟁과 진출을 제한해 놓은 채 중소업체들이 ‘그들만의 리그’에 안주한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다. 문제를 제기하는 진영은 영국 경제학자 존 힉스의 경구를 인용한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그는 논문 ‘독점이론’에서 ‘독점의 가장 좋은 점은 (경쟁을 떠나) 편하게 살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파했다. 올해 초 한 중소기업 단체가 중기 적합업종에 속한 업체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이 제도가 ‘심리적 안정에 도움이 되었다’(66%)는 답변이 압도적이었다.

논란이 뜨거워지자 전국 150여 개 양조장이 가입돼 있는 한국막걸리협회가 11일 ‘대기업 진입은 500개 중소 막걸리 업체의 폐업을 불러올 것’이라는 성명을 냈다. 다음 달 대통령직속 동반성장위원회가 중기 적합업종제도 도입 3년을 맞아 막걸리를 시작으로 순차적으로 고추장 세탁비누 등 100개 업종의 재지정 작업에 들어간다. 대기업과 중소 및 영세업체는 본격적인 대결 국면으로 접어든 모양새다.

당장 생존이 어려운 영세업체를 시장경쟁이라는 하나의 잣대로 적자생존으로 그냥 내모는 것도 정부가 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중기 적합업종도 경제시스템을 왜곡하는 일종의 규제라는 점에서 효과를 면밀히 분석하는 작업을 도외시할 수 없다. 최근 미 식품의약국이 처음으로 경제학자에게 의뢰한 ‘담배 규제’에 대한 규제영향평가는 흥미롭다. 경제학자들은 금연으로 인해 줄어든 행복의 양이 금연으로 얻은 건강의 70%라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이 정도의 꼼꼼한 규제영향평가는 기대하지 않는다. 3년 전 여론에 밀려, 보이지 않는 정치적인 이유로 서둘러 제도를 도입했던 실수를 재지정 때는 되풀이하지 않았으면 한다. 미국 한 동네 서점의 혁신도 참고했으면 좋겠다. 중소업체들이 이 제도를 재기의 발판으로 삼고 있는지, 경쟁을 피하는 울타리로만 여기고 있는지도 주요 평가지표가 될 것 같다.

박현진 소비자경제부 차장 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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