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 에세이/신은재]아이들이 어른보다 나은 세상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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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재 인천 하늘고 교사
신은재 인천 하늘고 교사
“선생님, 화장실 다녀와도 되나요?” “선생님, 프린트 가져와도 돼요?”

오늘도 어김없이 들꽃 같은 학생들이 하나하나 허락을 구한다. 여전히 어른들의 말을 믿고 따르고 행동한다. 작년 이맘때쯤엔 소풍과 수학여행과 체육대회라는 굵직한 행사들로 마냥 신나고 들떠 있었는데, 올해는 아이들도 교사들도 한 톤쯤 낮은 분위기다. 시간이 흘렀다고 묵직한 분위기는 조금씩 풀어지고 있다지만 새로운 소식을 접할 때마다 마음에 생채기가 나는 것은 여전하다.

처음 세월호 소식을 들었을 때가 떠오른다. “선생님, 수학여행 가던 배가 진도에서 가라앉고 있대요.”

수업을 마치고 자리에 돌아온 내게 동료 선생님이 전한 소식이 시작이었다. 세월호에 있을 단원고 학생들과 또래인 우리 학교 학생들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작년에 나 역시 1학년 학생들을 데리고 수학여행을 다녀왔던 차였다. 구명조끼를 입고 그 상황에서 가장 전문가였을 선장의 방송에 따라 얌전히 앉아 있었을 학생들을 생각하니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들었다.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지고, 나와 우리 아이들도 저 상황에 놓일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생존자 소식을 애타게 기다렸지만 오히려 사망자 수가 늘었고 선생님들끼리도 말을 잃어갔다. 동료 교사의 후배 선생님이 발견됐다는 소식을 접하고서는 수업시간에 웃기조차 쉽지 않았다.

텔레비전을 보면 너무 울어 이젠 켜놓지도 못하겠다는 선생님과, 노란 리본을 달기조차도 죄스럽다고 느끼는 선생님. 집단상흔으로 남아버린 인재(人災) 앞에서 우리는 망연자실해질 수밖에 없었다.

어른(선장)의 말을 믿지 않았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 아프다. 교단에서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 이제는 모르겠다. 무엇을 믿고 무엇을 따르라고 할 것인지…. 불신의 시대에 교단에서는 믿음을 가르쳐야 하는 역설적인 상황에 놓였다. 언제쯤이면 아이들에게 교과서와 현실은 다르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우리 학교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담요와 샴푸 같은 생필품을 모으고 400만 원이 넘는 모금 활동을 했다. 그 돈으로 여러 물품을 사서 20박스를 정성스럽게 포장해 진도로 보냈다. 600명이 넘는 전교생이 한마음으로 쓴 손편지도 진도 체육관에 여전히 붙어 있다.

이런 학생들의 모습에서 희망을 찾는다. 어른들에게서 받은 상처를 아이들은 스스로 이겨내고 있던 것이다.

어제는 스승의 날이었다. 한 학년이 텅 비어버린 단원고 선생님들이 맞는 스승의 날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가 없다. 다만 14년 전 부일외고 수학여행 사고로 평생 죄책감을 지니고 살고 있다는 당시 생존자의 말이 잊히지 않았으면 한다. ‘부디 생존자와 남은 가족들이 절대 자신을 탓하게 하지 말아 달라’는 외침. 살아남은 이들의 슬픔은 어쩌면 평생의 주홍글씨로 남을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유달리 시린 5월이다.

신은재 인천 하늘고 교사
#스승의날#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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