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무죄, 흔들리는 對共수사력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26일 03시 00분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의 유우성 씨가 항소심에서도 무죄 판결을 받았다. 1심에서 무죄가 나온 이 사건은 2심 과정에서 국가정보원이 유 씨의 간첩 혐의 입증을 위해 중국 출입경기록 자료를 조작한 것이 드러나 대통령과 국정원장이 사과해야 했다. 국정원의 증거조작이 항소심에 불리하게 작용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다만 재판부는 중국인인 유 씨가 탈북자 정착 지원금을 받은 혐의에 대해서만 유죄를 인정해 원심과 같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2565만 원을 선고했다.

1, 2심이 인정한 사실관계가 대법원에서 뒤집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러나 증거보전 진술의 증거능력에 관해서는 다투어볼 여지가 있다고 본다. 서울고법은 유 씨의 여동생이 법관이 주재한 증거보전 절차에서 오빠의 간첩행위를 시인하는 진술을 한 것에 대해 증거능력을 부인했다. 통상 법원은 증거보전 진술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만 이 사건에서는 증거보전 절차를 비공개로 진행한 사유를 밝히지 않았다며 증거로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간첩사건은 증거 수집이 어렵기 때문에 관련 증인이나 피의자의 증거보전 진술에 크게 의존한다. 증거보전 진술의 증거능력과 관련해 대법원 판결이 어떻게 나올지 주목할 수밖에 없다.

최근 탈북자가 급증하고 입국 경로도 다양해지면서 대공(對共)수사 역시 기존 방식이나 법리로 대응하기 힘든 상황을 맞고 있다. 탈북자 위장 간첩 수사의 경우 증거가 중국과 북한에 있어 당사자의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다.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 변호인에 의해 수사가 제약을 받는 사례도 있다. 검찰은 대공수사가 무력화하지 않도록 선진 수사기법 등 다양한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

국정원 수사팀은 조작한 증거를 법원에 제출해 형사사법 체계를 우롱하는 국기(國紀) 문란 행위를 저질렀다. 증거 조작을 둘러싼 논란 과정에서 중국 내 대북 인적 정보망이 무너지고, 간첩을 잡아야 할 국정원 대공수사국이 존폐의 위기에까지 몰린 것도 뼈아픈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원에 ‘뼈를 깎는 환골탈태의 노력’을 주문했다. 깎을 뼈가 남아 있을지 모르지만 국정원이 새롭게 태어나지 않으면 국가에 대한 신뢰도, 안보도 흔들릴 수 있다.
#유우성#간첩#무죄#증거#국정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