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교육 마피아’ 놔두고 공대 혁신 되겠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11일 03시 00분


한국의 4년제 공과대학 졸업생은 매년 6만9000여 명에 이른다. 인구 1만 명당 공대 졸업생 수는 10.9명으로 미국(3.3명) 독일(5.5명) 영국(4.4명) 같은 선진국보다도 훨씬 많다. 지난해 기준으로 4년제 대학 196곳 가운데 156곳에 공대가 있다. 그러나 기업인들은 “공대 졸업생들을 뽑아도 실제 업무에 투입하려면 처음부터 다시 가르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비싼 등록금을 내고 대학을 졸업한 신입사원들에게 ‘업무 기초’부터 다시 교육하는 데 들어가는 돈과 시간의 낭비는 기업 경쟁력을 갉아먹는다.

공대의 교육, 연구, 평가 구조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대학들이 과목 선택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바람에 학생들은 학점 취득과 취업 준비에 쉬운 과목을 선호해 전공 지식이 취약하다. 공대의 전공 학점 가운데 전공필수 비율은 미국 스탠퍼드대가 81.5%, 위스콘신대가 72.1%인 반면 한국 공대의 평균은 47.3%에 불과하다. 2000년부터 교수 채용 및 업적 평가에서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 논문 건수를 중시하면서 공대 교수와 산업 현장의 괴리도 심각하다. 같은 이공계라도 공대는 자연대보다 산업 현장을 아는 ‘실전형 인재’가 더 중요한데 실용적 연구는 찬밥 신세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가 어제 공대의 현장 지향성과 산학 협력을 강화한 ‘공과대학 혁신방안’을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기업의 유능한 인력이나 연구원은 SCI 논문 건수에 구애받지 않고 공대 교수로 임용할 수 있는 내용이 들어 있다. 공대 교육에서 전공과목 비중을 높이고 현장 실습을 활성화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큰 방향은 옳다고 본다.

노무현 이명박 정부도 이공계 대학의 혁신을 강조하면서 수술에 나섰으나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은 교육부와 대학 같은 ‘교육 마피아’들의 저항을 뚫지 못한 탓이 크다. 교육부는 자신들의 ‘밥그릇’이라고 여기는 대학에 대해 다른 정부 부처가 나서는 것을 마뜩지 않게 여겼고, 대학 역시 변화와 개혁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대통령을 중심으로 범(汎)정부 차원의 강력한 개혁의지와 실천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실전형 공대’로 탈바꿈시키는 개혁은 이번에도 공염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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