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간첩사건 탈북자 비공개 증언, 北에 알려준 자 누군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2일 03시 00분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항소심에서 탈북자 A 씨가 증언한 내용이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에 유출돼 함경도에 있는 A 씨의 자녀들이 위험에 빠졌다고 한다. 작년 12월 6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비공개 재판에는 판사와 검사, 증인 A 씨, 피고인 유우성 씨,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소속 변호인 5명이 참석했다. 그날부터 한달 뒤 북한의 A 씨 가족은 보위부로부터 “남매를 가만두지 않겠다”는 협박을 받았다는 것이다. A 씨는 증언 유출 과정을 조사해 달라는 탄원서를 1월 14일 재판부에 냈다.

검찰은 “유출 사실이 확인된 바 없다”고 했지만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탄원서에 나오는 A 씨 딸의 진술은 매우 구체적이다. 탄원서에 따르면 A 씨의 딸이 1월 6일 그에게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 “(사흘 전) 보위부 반탐처에 가서 조사를 받았다”며 “아빠가 재판에 나가서 조국의 권위와 위신을 훼손시키는 나쁜 일을 한다고 했다”고 전했다. 보위부 반탐처는 반(反)체제 사범 색출과 탈북자 동향 파악 등 대남공작도 수행하는 기관이다.

북한 보위부 공작원 출신인 A 씨는 유 씨의 간첩 혐의 입증을 위해 신변 보장을 약속받고 증인으로 나섰다. 2003년 귀순한 뒤 특별보호 ‘가’급 대상으로 분류돼 경찰관 3명의 24시간 밀착 경호를 받고 있다. A 씨를 포함한 탈북자들은 자신들의 신상정보가 외부로 유출되는 것에 극도의 불안감을 갖는다. 피고인 유 씨는 화교 출신임에도 탈북자로 위장해 서울시 공무원 신분으로 일하면서 얻은 탈북자 200여 명의 신원정보를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에 넘긴 혐의로 구속 기소됐으나 간첩 혐의에 대해서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바 있다. 유 씨가 작년 초 구속됐을 때 탈북자들이 자신의 신상정보가 북에 넘어갔을까봐 공포에 떨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작년 12월 비공개 재판에는 10명 정도가 참석했다. 판사와 검사, A 씨를 제외하면 A 씨의 정보를 북에 유출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A 씨는 “증인으로 출석한 것을 천만 번 후회한다”며 가슴을 치고 있다. 선진국에선 법정에 증인으로 나선 사람의 가족을 협박하는 범죄는 가중 처벌한다. 그의 가족은 현재 생사가 확인되지 않는 상태다.

A 씨의 일로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은 또 다른 국면에 들어섰다. 국가정보원의 증거 조작 사건과 별도로, 검찰과 국정원은 반드시 비공개 증언의 유출자를 찾아 어떻게 북한과 선을 대고 있는지 밝혀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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