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한상복의 여자의 속마음]<55>여자의 복수가 더 무서운 까닭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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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심만큼 무서운 게 없다. 한 청년이 대기업의 제안을 받아 이직을 결심했다. 한데 사표를 내고 쉬다가 채용 취소 통보를 받았다. 확인 결과 팀장이 인맥을 총동원해 복수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자신을 아껴주던 팀장이 그랬다는 게 충격이었다.

팀장이 이중인격일 수도 있다. 하지만 기대를 저버린 이한테까지 좋은 사람으로 남는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배신감의 크기는 쌓아온 애정과 정성에 비례하는 속성이 있다. 아낌없이 정을 줬던 사람일수록 더 상처를 받고 상대로부터 버려졌다는 모멸감에 분노한다. 이 점에서 배신당한 여성의 앙심만큼 집요한 게 없다. 행복이 저물 무렵, 원망의 양질전화와 함께 복수극이 이미 시작된다. 배려하던 습관에 미움의 에너지라는 동력이 실리는 순간, 여성 특유의 세심한 마음이 날카로운 칼날로 바뀐다.

한 인터넷 매체가 20, 30대 여성들을 상대로 ‘복수’에 대해 설문조사를 벌인 적이 있다. 응답자 중 70% 이상이 상처를 받은 뒤 치밀한 복수계획을 세워본 적이 있으며 40%가량은 복수극을 실행에 옮겼다고 응답했다. 복수심을 불태운 대상은 친구, 애인, 직장상사 등의 순이었다.

성 복수극 드라마의 원형을 그리스 신화의 메데이아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메데이아는 남편 이아손이 코린토스의 왕이 되려는 야망에 자신을 버리고 그라우케 공주를 선택하자 배신감에 치를 떨며 복수를 다짐한다.

메데이아는 공주에게 독이 묻은 옷을 선물로 보낸다. 공주는 물론이고 공주를 건드리는 이까지 줄줄이 죽음을 당한다. 이아손은 깜짝 놀라 메데이아에게로 돌아가지만 그녀는 이미 두 아이까지 살해한 뒤 떠나버린 후다. 세상에 이런 여자가 있을까 싶다.

이따금 여성의 복수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비정하게 여겨지는 이유는 남성 중심 사회의 이중 잣대 때문이기도 하다. 남성의 복수가 흔히 성공 또는 쾌거로 여겨지는 데 비해 여성의 그것은 나쁜 짓으로 비난받는 경우가 많다. 남성이 바라는 여성의 미덕(사랑과 복종)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성의 복수가 소름이 돋을 만큼 두려운 본질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그들이 상대의 입장을 헤아리는 데 전문가라는 점이다. 복수 상대가 애지중지하는 약점에 벼리고 벼린 칼을 찔러 넣어 그를 파멸로 몰아넣는다. 작은 부분까지 파악하던 배려의 마음이 방향을 틀면 이토록 무서운 무기로 변하는 것이다.

더구나 그들의 복수는, 어떻게 하면 상대가 더욱 고통스러울지에 초점을 맞춘다. 상대를 이기고 파괴하는 남성의 복수 방식보다 확실히 세심하다.

물론 어떤 남자들은 매번 당하면서도 여전히 여자 무서운 줄 모른다.

한상복 작가
#복수#여자#배신감#앙심#약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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