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 기자의 무비홀릭]이 영화들이 망한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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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
영화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
화제작이 의외로 참패하는 경우를 극장가에서 종종 보게 된다. 알고 보면 이유는 진짜로 간단한 것을…. 이 영화, 왜 망했을까? 지금부터 Q&A를 통해 내 맘대로 묻고 대답해준다.

Q. 인기그룹 ‘빅뱅’의 멤버 탑(본명 최승현)이 비운의 남파공작원으로 나오는 영화 ‘동창생’이 쫄딱 망한 이유를 모르겠어요. 탑이 연기를 꽤 잘했고 액션도 엄청 창의적이었거든요? 10대들도 이 영화를 외면한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어요.

A. 간단합니다. 죽도 밥도 아니었기 때문이에요. 30대 이상 관객들은 탑이 주연인 것에서 ‘애들이 보는 영화’로 단정해 찾질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알고 보면 정통 액션드라마거든요. ‘탑 오빠’를 응원하는 10대 소녀들이 막상 보면 ‘뜨악’ 하게 되었던 겁니다. ‘은밀하게 위대하게’와 같은 유머나 이른바 야오이 코드(남성의 동성애를 애틋하고 로맨틱하게 그려내는 일본 만화나 소설의 경향)도 없고, 너무 ‘정색’하는 영화였으니까요. 탑을 주연으로 넣어 신세대도 잡고, 남파간첩이란 소재로 기성세대도 잡으려는 전략이 완전 실패한 겁니다. 이건 바람도 피우고 아내에게 사랑도 받겠다는 말도 안 되는 심리랑 똑같은 거예요.

Q. 그럼 ‘변호인’에는 아이돌 그룹 ‘제국의 아이들’의 잘생긴 멤버 임시완이 대학생으로 나오는데요. 이건 완전 어른들이 보는 영화인데, 의외로 10대들도 좋아하던데요? 왜 그런 거죠?

A. 임시완을 넣은 것은 ‘신의 한 수’라고 봅니다. 원래 이런 심각한 영화에 아무 생각 없는 10대들은 무관심하거든요. 그런데 심하게 잘생긴 ‘시완 오빠’를 고문의 피해자로 등장시킨 게 주효한 거죠. 팬티 하나만 입힌 채 대롱대롱 시완 오빠를 매달아 놓고 1시간 동안 ‘통닭구이’(고문의 일종)를 영화 속에서 하니까 10대 소녀들이 돌아버린 겁니다. ‘우리 시완 오빠 건드리는 놈들은 다 나쁜 ××들이야!’ 하고 광분하면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뜨겁게 달궈지며 관람이 확산된 거죠. 역시 아이돌은 학대해야 제맛이에요.

Q. 흐메. 놀라운 통찰력이군요. 그럼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란 영화가 망한 이유도 설명할 수 있나요? 20, 30대 누나들이 열광적으로 사랑하는 고교생 배우 여진구(17)를 등장시키고도 망했으니….

A. ‘여진구를 (영화에) 넣으면 누나들이 무조건 좋아한다’는 생각을 버리세요. 그건 ‘군인들은 설탕 들어간 음식은 다 좋아한다’는 믿음과 다를 바 없는 단순무식의 소치입니다. 영화를 본 누나들은 오히려 열 받았어요. 여진구가 누군가요? 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서 “잊으려 하였으나 널 잊지 못하였다”란 대사로 누나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게 된 소년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이런 순수한 소년을 데려다가 남 찌르고 썰어버리는데 천부적 재능을 가진 피칠갑 소년으로 등장시켜 버렸으니, 누나들이 격분하지 않겠어요? 게다가 아버지가 여진구에게 ‘손가락으로 여자를 즐겁게 해주는 방법’을 강의하는 저질스러운 장면에선 누나들이 극장을 뛰쳐나오고 싶은 심정이었어요. ‘순수한 우리 진구를 오염시키다니!’ 하며 격분했지요. 누나들의 이런 ‘순수 집착’은 ‘피겨여왕’ 김연아가 평생 연애 안 하고 혼자 살기를 바라는 대중의 심리와도 비슷한 거예요.

Q. ‘순수 집착’이라. 좀 어렵군요.

A. 쉽게 설명하죠. ‘겨울왕국’의 얼음공주 엘사가 경찰모자 쓰고 채찍 휘두르며 이웃나라 왕자들을 학대하는 변태라고 생각해보세요. 관객들의 기분이 산뜻하겠어요?

Q. 흠흠. 얼마 전 개봉한 ‘관능의 법칙’을 보았어요. 인생의 절정기를 넘어선 세 여성의 사랑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졌어요. 특히 자동차 안에서 애인(조민수)의 웃옷 아래로 손을 넣어 가슴을 만지려는 중년남자(이경영)의 손을 여인이 제지하면서 “나 배 나왔으니까 아래로 (손 넣지) 말고 위로 넣어” 하고 말하는 장면에선 그 리얼리티에 감탄했답니다.

A. 저질스러운 표현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이 영화는 ‘에로거장’ 봉만대 감독의 영화랑 같은 종류의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막상 보면 제법 재미있는데 애당초 이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가게 되지는 않는’ 매우 희한한 종류의 영화란 얘기죠. ‘노브레싱’처럼 ‘보고 나면 더럽게 재미없고 애당초 보고 싶지도 않은’ 영화보단 한 단계 위의 영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Q. 놀랍도록 명쾌한 설명이네요. 이렇게 분석에 탁월한 모습을 보니 어떤 영화가 앞으로 흥행할지 망할지도 척척 알아맞히겠네요? 13일 개봉되는 김희애 주연의 ‘우아한 거짓말’은 어떻게 될까요? 이 자리에서 예측해보세요.

A. 평론가는 흥행을 예측하지 않습니다. 다만 흥행 결과를 가지고 나중에 해설할 뿐. 제가 흥행을 예견할 수 있다면 왜 평론을 하고 앉아있겠어요. 영화 만들어 떼돈 벌지. 생각해보세요. 경영전문가라는 양반들이 수년 전만 해도 ‘두바이가 성공한 이유’에 대해 강의하고 돌아다녔잖아요? 그런데 두바이가 폭삭 망한 뒤엔 요즘 ‘두바이가 실패한 이유’에 대해 강의하고 다녀요. 성철 스님도 말씀하셨어요. “중(나)을 믿지 말고 부처를 믿으라”고요. 평론가 믿지 말고 영화를 믿으세요.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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