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231>돌 깎는 사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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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깎는 사람
―이기인(1967∼ )

사거리 한적한 귀퉁이에서 돌가루를 뒤집어쓴 돌
돌부처와 돌예수와 돌사자와 돌코끼리와 돌소녀가 한 반의 아이들처럼 놀고 있다
울타리가 없는 석재상 마당은 절이었다가 교회였다
가 아프리카 들녘이었다가 수줍은 소녀가 사는 외딴 집으로 변한다
한 반의 아이들이 지키고 있는 돌 부스러기는 염주와
묵주와 털과 상아와 젖가슴이 되지 못하고 빛의 산란을 일으킨다
콜록콜록 돌 깎는 사람이 오래된 기침을 하면서 한반의 아이들에게 오래된 천식을 가르친다
오래 입은 옷이 해지는 것을 가르치고 그 옷을 기워 입는 것을 가르친다
작은 돌에서 더 조그맣게 떨어져 나온 돌을 오래오래 보는 눈빛을 가르친다
아픈 몸을 끌고 가면서도 가끔은 되돌아보는 눈빛을가르친다


인가도 멀리 떨어져 있는 사거리일 테다. 트럭이나 시외버스가 매연을 뿜으며 쌩하니 지나갈 테다. 그 한적한 귀퉁이에 잡다한 석상들이 서 있는 석재상 마당. 메마르고 쓸쓸한 풍경에 시인은 따뜻한 입김을 불어넣는다. ‘돌부처와 돌예수와 돌사자와 돌코끼리와 돌소녀가 한 반의 아이들처럼 놀고’ 있단다. 고만고만한 석상들이 ‘한 반의 아이들처럼 놀고 있다’는 한마디에 순식간 온기가 돈다.

‘돌’은 다루기 만만치 않은 혹독한 생의 은유인지 모른다. 일생 돌을 깎으며 뿌옇게 날리는 돌가루를 마셔 ‘콜록콜록 오래된 기침을’ 하는 돌 깎는 사람. 그에게 풍부한 건 ‘한 반의 아이들’과 그 아이들을 깎으며 생긴 돌 쪼가리뿐이다. 석상을 주문한 사람들이 제때 찾아가면 좋으련만. 일만 시키고 몰라라 하는 사람들 때문에 고아가 된 석상이 더 늘지 않으면 좋으련만. 돌 깎는 사람은 돌을 깎는 순간에는 이런저런 생각하지 않고 돌을 깎으리라. 부처를 깎을 때는 절이었다가 예수를 깎을 때는 교회였다가 사자나 코끼리를 깎을 때는 아프리카가 되는 석재상 마당, 그 넓고 깊은 세계.

열어 놓은 창으로 살랑살랑 순한 바람이 불어오고 라디오는 벌써 ‘4월의 사랑’을 노래한다. 자잘한 글 한 편을 쓰면서 몸을 뒤틀고 “돌에서 물을 짜내는 것 같네!” 비명을 지르는 내가 부끄러워지는 시다.

황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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