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정원, 대공수사권 지키려면 특단 조치 취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10일 03시 00분


김진태 검찰총장은 어제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의 증거 조작 의혹에 대해 철저한 수사를 지시하면서 “이번 사건은 형사사법 제도의 신뢰에 관련된 문제”라고 말했다. 정확한 인식이다. 국가정보원 협조자 김모 씨가 위조한 문서는 단순히 사인(私人) 사이의 거래에 쓰인 게 아니라 범죄 혐의의 증거로 법원에 제출됐다. 더구나 간첩 혐의와 관련된 것이므로 증거 조작을 넘어 국가보안법상 날조죄에 해당할 수 있다.

국정원은 어젯밤 발표문을 내고 “조속히 검찰에서 진실 여부가 밝혀지도록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면서 “위법 사실이 확인되면 관련자를 엄벌에 처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정원은 검찰 수사에 앞서 자체 진상조사 결과를 먼저 내놓는 것이 도리다. 국정원이 김 씨에게 문서 위조를 지시했는지, 아니면 묵인이 있었는지 분명하게 설명해야 옳다.

국정원의 협조자 김 씨는 검찰 조사에서 “문서를 구해 오라고 지시한 것은 김 과장”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씨의 국정원 파트너라고 할 수 있는 대공수사팀의 김모 과장은 사업가로 위장한 국정원의 비밀 요원이다. 대북 정보 수집의 첨병 노릇을 하는 비밀 요원 한 명을 키우는 데 드는 돈과 시간은 적지 않다. 비밀 요원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불행한 사태를 자초한 것은 다름 아닌 국정원이다. 잘못된 관행을 이번 기회에 확실히 도려내고 넘어가야 한다.

국회 특위는 민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정원에 대공(對共)수사권을 계속 남겨두는 데 합의했다. 하지만 국정원이 증거를 조작하는 곳이거나 조작된 증거를 걸러낼 수 없는 곳이라면 대공수사권이 다시 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다. 국정원은 대공수사권을 지키고 기관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

민주당 등 야권은 이번 사건에 대한 특검과 국정조사, 남재준 국정원장과 황교안 법무부 장관의 사퇴를 요구했다. 사건이 정확히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요구는 오히려 수사 진행만 어렵게 할 뿐이다. 일단은 검찰 수사를 지켜봐야 한다. 위조문서는 검찰의 손을 거쳐 법원에 넘어간 것이므로 검찰에도 책임이 있다. 제대로 된 수사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특검 요구가 대두될 수 있음을 검찰은 명심해야 한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