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223>서울대공원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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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공원
―황인찬(1988∼ )

모르는 새들로 가득한 거대한 새장
우는 소리, 푸드덕 소리, 전부 뒤섞이며 이상한 완벽함을 선사한다

Do not feed this animal
경계선에 매달리거나 안으로 들어가지 마십시오
우리 안에 있는 것보다 먼저 보게 되는 것이 있다

흰 공작을 보며 신이 있다면 저런 게 아니었을까, 네가 말했고
과연 그럴 수도 있겠군

오래 들여다보면 소리를 지르고 펄쩍 뛸 것 같았다

그러니 잠깐만, 눈을 감아 보세요
신성을 망치지 마세요

우리 밖에 쓰인 말을 따랐다
입구와 출구가 나란한 길을 따랐다
걷다가 잠깐 졸기도 한 것 같았다

그래도 오늘은 좋았지, 그동안 안 좋았던 일들은 모두 잊자
그렇게 한다면, 그렇게 된다면
새로운 인생이라는 것도, 새롭지 않은 인생이라는 것도 다 시작되는 것 아닐까?
의외로 따뜻한 흰 공작을 쓰다듬으며 네가 말했다

돌아온 방에 누웠을 때, 잠든 너의 숨소리가 조용한 실내에 울려 퍼졌는데
그것이 고맙고 징그러웠다

화자가 가장 가까운 사람과 함께 서울대공원, 그중 조류관에 다녀온 어느 하루다. 두 사람의 불화가 쌓였던 나날이었나 보다. ‘그래도 오늘은 좋았지, 그동안 안 좋았던 일들은 모두 잊자’. ‘너’는 화자와의 관계가 지속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게 제 의지대로만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안다. ‘그렇게 한다면, 그렇게 된다면’, 의지와 소망을 함께 담아, ‘의외로 따뜻한 흰 공작을 쓰다듬은’ 너는 방에 돌아와 잠에 빠진다. 긴장이 풀리고 비로소 마음 편해진 듯이.

‘흰 공작’은 ‘신이 있다면 저런 게 아니었을까’와 연계된 신의 비유다. ‘오래 들여다보면 소리를 지르고 펄쩍 뛸 것 같은’ 신. 그래서 잠깐 눈을 감은 너는 ‘신성을 망치지 않고’ 그 품에서 숨소리 고르게 잠들었는데, 화자는 그것이 고마운 한편 징그럽다. 왜 징그러울까? 찬찬히 시를 읽어보자. 시 곳곳에 비유가 얽혀 있다. 힘을 하나도 안 들이는 듯 담담한 서술에서 세밀하긴 하나 결코 복마전은 아닌 비유를 찾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만의 어조, 어법이 자아내는 뉘앙스랄지 분위기가 있는 황인찬 시에 매력을 느끼는 독자가 많다. ‘무엇을 쓰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쓰느냐’가 문학일 테다. 어떤 법관이 한 소설가에게 그의 문체를 상찬하다 껄껄 웃으며 맺은 말이 떠오른다. “그런데 문체에는 저작권이 없지요!”

황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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