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이석채 수사, 태산 들쑤시더니 쥐 한 마리 찾은 꼴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17일 03시 00분


서울중앙지법은 그제 이석채 전 KT 회장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했다. 법원은 “주요 범죄 혐의에 대한 소명이 부족한 현 단계에서 구속의 사유와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 전 회장을 구속 수사해야 할 충분한 증거가 없다는 얘기다. 검찰이 KT 본사 등 16곳을 여러 차례 압수수색했음에도 이런 결과가 나왔으니 ‘부실 수사’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검찰은 이 전 회장을 지난해 말 4차례에 걸쳐 소환 조사한 결과 배임 128억 원, 횡령 20억 원대에 이르는 혐의를 찾아냈다고 밝혔다. 구속영장 청구는 김진태 검찰총장이 새로 만든 검찰수사협의회 구성원인 부장검사 6명이 합의해 결정했다. 물론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이 무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유·무죄에 대한 판단은 앞으로 법원이 재판 과정에서 가릴 일이다.

공기업에서 민영화된 대표적인 기업의 최고경영자로 이명박 정부 때 선임된 이 전 회장과 정준양 포스코 회장은 새 정부 들어 퇴진 압박을 받았다. 정 회장은 포스코에 국세청 특별조사팀이 들이닥치자 물러나겠다고 한 반면, 이 전 회장은 검찰 수사에 한동안 아랑곳하지 않고 버텼다. 검찰은 지난해 2월 시민단체인 참여연대가 이 전 회장을 횡령 및 배임 혐의로 고발했을 때만 해도 손을 놓고 있다가 8개월이 지난 지난해 10월에야 수사에 착수했다. 이 전 회장이 퇴진 압박에도 자리를 내놓지 않고 있으니까 검찰이 칼을 뽑아 든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샀다. 이번에 법원이 구속영장을 기각했으니 ‘찍어내기 수사’였다는 말이 나올 만하다.

54개 계열사를 거느린 KT의 최고경영자가 무리한 기업 인수합병(M&A)을 추진하다가 회사에 막대한 손실을 입혔다면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이 전 회장은 임원들에게 급여를 많이 준 뒤 일부를 되돌려 받는 식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에 대해 “조성된 내막을 몰랐고 개인적으로 쓴 것이 아니다”라고 항변했지만 떳떳하지 못하다. 제대로 된 최고경영자라면 이런 나쁜 관행을 적극적으로 나서서 뜯어고쳤어야 했다. 권력과 가까운 정치권 인사 등을 부사장이나 고문 등으로 수십 명이나 영입해 새로운 권력에 줄 대려고 한 것도 투명 경영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경영 판단 등의 문제를 형사 처벌로 몰고 간다면 검찰권의 남용이 될 수 있다. ‘태산이 떠날 듯이 요동하게 하더니 뛰어나온 것은 쥐 한 마리뿐이었다(泰山鳴動鼠一匹·태산명동서일필)’는 옛말이 이번 수사에 들어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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