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영식]제1차 세계대전, 그 후 100년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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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식 국제부 차장
김영식 국제부 차장
‘벨 에포크(La belle epoque).’

프랑스에선 제3공화정 출범 다음 해인 1871년부터 제1차 세계대전이 벌어진 1914년 이전 시기를 이렇게 부른다. ‘아름다운 시대’라는 뜻이다. 먹고사는 환경이 나아졌다. 문화예술은 대중 속으로 파고든다.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는 사후에 재조명받았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선명한 색채를 화려하게 뽐냈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출간했다. 1871년 프로이센과의 전쟁이 끝난 뒤엔 평화에 대한 낙관주의가 번지기도 했다.

그런데, 그렇게 아름답기만 했을까?

벨 에포크에는 숨겨진 이면(裏面)이 있다. 1차 대전이라는 ‘지옥’을 경험한 뒤에 돌이켜보니 그 시절이 아름다운 시대였다는 것이다. 현재를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이 찬란했던, 혹은 화려했던 것으로 착각해서 기억하는 ‘아, 옛날이여’ 식의 향수(鄕愁)인 셈이다.

벨 에포크를 거론하는 이유는 올해가 1차 대전 발발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기 때문이지만 동북아시아 지역 정세가 녹록지 않은 시기라는 점 때문이기도 하다.

지속적인 핵개발은 물론이고 장성택 처형 이후 예상하기 힘들어진 북한 내부 불안 요인은 동북아 정세의 주요 변수다. 게다가 2차 세계대전 이후에 형성된 국제질서를 뒤흔들려는 일본과 중국의 움직임은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관련국들이 앞다퉈 군비 증강에 나서는 한편 민족주의를 앞세우며 상대를 비난하는 모습은 1차 대전 직전의 갈등 기류를 떠올리게 한다.

경제성장으로 얻은 자신감을 군사·외교 분야로 확대하는 중국은 해양 진출을 통한 헤게모니 장악을 꿈꾸고 있다. 예멘 아덴 항에서부터 남중국해로 이어지는 ‘진주목걸이’ 형태의 원유 해상 수송라인을 건설 중인 중국은 이를 군사 요충지로 활용할 태세다. 특히 2013년 11월 23일 중국의 일방적인 방공식별구역(ADIZ) 설정은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전략(re-balancing)에 맞서 동북아 질서를 재정립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앞으로 중국의 다양한 국제질서 도전 행보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이른바 ‘적극적 평화주의’는 군사 대국화를 향한 움직임이다.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를 강행하는 아베 총리의 발걸음에는 내부 지지율만 높고 선거에 이길 수 있다면 주변국의 반응은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국수주의적 태도가 묻어난다. 일본 집권 자민당이 올해 주요 활동 목표에서 부전(不戰)의 맹세 표현을 삭제하기로 한 것도 전후 체제를 탈피하려는 것이다.

기존 국제질서가 해체될 위기에 접어든 동북아시아의 현재를 두고 파이낸셜타임스는 최근 ‘뮌헨협정보다는 사라예보를 더 많이 생각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사라예보와 뮌헨협정은 각각 1차, 2차 대전으로 이어지는 도화선의 하나로 꼽힌다.

현대 국제정치에선 이 두 사건이 다른 상징으로 인식된다. 유화정책으로 비난받는 뮌헨협정은 지도자에게 강경한 군사 대응을 촉구하는 요소로 활용된다. 사라예보는 전쟁으로 휩쓸려 가는 것을 경고하는 뜻으로 쓰인다. 중-일 간 긴장 고조가 군사적 충돌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선 사라예보를 기억해야 한다는 얘기다. 북한의 군사적 도발 역시 마찬가지다.

전쟁을 벌인 이들은 모든 것을 잃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면 이런 역사의 교훈은 아무리 되새겨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한 가지 더. 가공할 현대무기를 앞세워 과거와 다른 형태의 충돌이 벌어진다면 그 뒤엔 벨 에포크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김영식 국제부 차장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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