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현미]조던증후군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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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미 출판국 전략기획팀장
김현미 출판국 전략기획팀장
1990년대 미국 프로농구에서 시카고 불스는 승률 8할이 넘는 역대 최강 팀이었고, 그 중심에 ‘농구 황제’라 불리던 마이클 조던이 있었다. 당시 불스 팀을 이끌었던 필 잭슨 감독은 회고록 ‘성스러운 골대(Sacred Hoops·국내에는 ‘NBA 신화’로 번역)’에서 조던의 현란한 개인기를 이렇게 묘사했다. “농구공만 있으면 조던은 다른 사람이 생전 구경도 못해 본 많은 기술을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그가 슛을 하려고 뛰어오르는 모습을 보면 마치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 같았다. 그는 며칠이라도 그냥 공중에 떠 있을 것 같았다.”

처음부터 조던과 불스 팀이 찰떡궁합이 된 것은 아니었다. 조던이 공을 잡으면 관중은 그가 다음에 어떤 행동을 할지 숨을 죽이고 지켜보았다. 문제는 팀 동료들까지도 그의 묘기에 넋을 잃고 구경만 한다는 것이었다. 상황이 급박할수록 선수들은 뒤로 물러서서 조던이 일으킬 ‘기적’을 기다렸다. 잭슨 감독은 이를 ‘조던증후군’이라 했다. 그사이 상대팀은 조던을 밀착 방어해 효과적으로 득점 기회를 차단할 수 있었다. 조던은 팀에 구세주 같은 존재였지만 감독에게는 넘어야 할 장애물이기도 했다.

어느 조직에나 스타플레이어는 있다. 회사는 이들을 핵심 인재 혹은 우수 인재라 부르며 권한 위임과 높은 연봉, 다양한 교육과 성장의 기회를 제공한다. 이들에게 파격적인 대접을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핵심 인재가 보통 인재보다 조직의 성과에 더 크게 기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유정식 씨는 ‘착각하는 CEO’에서 이것이 세상의 모든 리더들이 저지르는 흔한 실수 중 하나라고 했다. 유 씨는 먼저 이런 질문을 던진다. “보통 수준의 역량을 가진 직원이 실력이 월등한 직원과 한 팀이 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우수한 동료에게 한 수 배울 기회가 생겼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할까, 아니면 괜히 위축되고 그와 비교되는 상황을 가능하면 피하고 싶어 할까?”

회사는 앞의 결과를 기대하지만, 현실은 뒤의 결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다양한 심리실험 결과를 보더라도 ‘하이 퍼포머(high performer)’를 팀원으로 참가시키면 다른 팀원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타플레이어가 조직을 떠나자 팀의 성과가 오히려 예전 수준으로 회복됐다는 보고도 있다. 유 씨는 “많은 기업 경영자들이 우수 인재를 중심으로 한 인사정책을 통해 성과주의의 마지막 방점을 찍으려 한다”며 “그 과정에서 부지불식간에 우수 인재의 가치를 과대평가하고 보통 인재의 기여를 무시한다”고 지적했다.

잭슨 감독은 NBA에서 시즌 최고득점자를 배출한 팀이 같은 해 챔피언이 된 경우가 극히 드물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챔피언십 우승을 위해 필요한 것은 현란한 개인기가 아니라 팀플레이다. 그는 조던에게 “위대한 선수의 자질은 그가 얼마나 많은 득점을 할 수 있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동료들의 활동을 얼마나 도와줄 수 있느냐에 있다”고 설득했다. 뛰어난 스타급 선수부터 벤치나 지키는 후보 선수까지 모든 선수가 공을 만질 기회를 얻고 팀 내에서 자신의 몫이 무엇인지 알고 있을 때, 어쩌다 이기는 팀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승리하는 팀이 될 수 있다. 누구나 조던처럼 위대한 선수가 될 수는 없어도 그와 함께라면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릴 수 있다는 믿음이 있을 때 팀워크는 절로 발휘된다.

연말연시 어수선했던 인사이동이 마무리된 지금쯤 곰곰이 돌아보자. 당신은 착각하는 CEO인가, 개인기만 자랑하는 스타플레이어인가, 여전히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한 후보 선수인가.

김현미 출판국 전략기획팀장 khm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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