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일본이 과거사 직시해야 한일 관계 풀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20일 03시 00분


국가기록원은 한국 정부가 1953년 작성한 3·1운동 및 일본 간토(關東) 대지진 당시 한국인 피살자, 일제강점기 강제 징병자 등 세 가지 명부 67권의 분석 결과를 공개했다. 이승만 당시 대통령의 지시로 내무부가 전국 조사를 통해 작성한 명부로 올해 6월 주일본 한국대사관이 청사를 신축하면서 이사를 하는 과정에서 발견됐다. 사건을 경험한 생존자가 많이 남아 있던 60년 전의 자료여서 사료적 가치가 높다.

‘3·1운동 피살자 명부’에는 630명의 희생자 명단과 순국 상황이 실려 있다. 1919년의 3·1운동 순국자는 수천 명으로 추정되지만 그동안 공식 인정된 독립유공자는 391명이었다. 1923년 간토 대지진 때 일본인에게 학살된 6600∼2만 명(추정) 가운데 290명의 명단과 피살 상황, 강제 징병자 22만9781명의 명단도 공개됐다. 이 자료들은 과거 일본이 저지른 아픈 역사를 거듭 일깨워준다.

그렇지만 일본의 역사인식은 실망스럽다. 박근혜 대통령이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 표지석 설치가 중국에서 원만하게 진행되는 데 대해 18일 방한한 양제츠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에게 사의(謝意)를 표명하자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어제 “일본은 지금까지도 ‘안중근은 범죄자’라는 입장을 한국 정부에 밝혀 왔다”고 궤변을 늘어놓았다. 시모무라 하쿠분 문부과학상은 최근 “박 대통령의 ‘동북아 공동 역사 교과서 발간 제의’를 환영한다”고 밝혔지만 “종군 기자는 있었지만 종군 위안부는 없었다”고 말한 적이 있는 사람이어서 진정성이 의심스럽다.

한일 양국은 1년 7개월 뒤면 국교 정상화 50년을 맞는다. 그런데도 정상회담조차 열기 어려울 정도로 얼어붙은 분위기가 1년 이상 계속되고 있다. 두 나라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공유하는 이웃으로서 외교 안보 경제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협력할 필요가 있다. 근본적 해결은 쉽지 않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해법을 모색할 시점이다. 관계 악화의 일차적 책임이 있는 일본이 먼저 과거사를 직시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한국 역시 일본의 역사 왜곡이나 독도 도발, 일본군 위안부 부정 같은 양보할 수 없는 현안에는 단호히 대처하면서도 다른 사안에서는 지나치게 일본을 자극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주일 대사를 지낸 공로명 전 외무부 장관은 8월 동아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일본은 역사에 눈감지 말고 한국은 유연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 나라 정부와 지도자가 반드시 귀담아들어야 할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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