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민참여재판 문제점 다시 드러낸 안도현 재판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30일 03시 00분


그제 전주지법에서 열린 국민참여재판(참여재판)에서 지난해 대통령선거 때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허위 사실로 비방한 혐의로 기소된 시인 안도현 씨에 대해 배심원 8명이 전원일치로 무죄 평결을 내렸다. 안 씨는 당시 문재인 민주당 대선후보의 공동선대위원장이었다. 재판부(재판장 은택)는 원칙적으로 변론이 종결된 날 선고를 해야 하는데도 “평결과 견해가 다르다”며 선고를 다음 달 7일로 연기했다. 재판부가 배심원 평결에 당혹감을 표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평결은 참여재판이 선거범죄를 다루고, 그것도 투표의 경향성이 뚜렷한 곳일 경우 재판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배심원은 지방법원 관할 지역의 만 20세 이상 주민 중에서 뽑는다. 문 후보는 대선 때 전주 지역에서 86.25%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통계적으로 이런 지역의 배심원들은 문 후보 측의 안 씨에게 동정적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는 이견이 있어도 주장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배심원 구성은 배심제가 발달한 미국에서도 종종 문제를 일으킨다. 1992년 로스앤젤레스 폭동의 발단이 됐던 로드니 킹 사건은 흑인인 로드니 킹을 집단 구타한 백인 경찰관들에게 백인 중심의 배심원들이 무죄 평결을 내린 데서 비롯됐다. 안 씨에 대한 평결도 지역에 따라 상반된 결과가 나올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법은 어디서나 똑같이 적용돼야 한다는 법 감정에 어긋난다. 배심 평결은 권고적 효력만 갖고 있다. 재판부는 전원일치 평결이 주는 압박에서 벗어나 헌법과 법률에 따라 안 씨의 유무죄를 판단해야 한다.

2008년 도입된 참여재판은 살인 강도강간 등 일부 중범죄 사건에만 적용됐으나 지난해 7월 모든 형사합의부 사건으로 확대됐다. 올해 3월 국민사법참여위원회는 배심 평결에 사실상 기속력(羈束力·강제력)을 부여하는 방안도 마련했다. 그렇지만 영미식 배심제를 모방한 참여재판은 우리 형사소송 체계와 충돌하는 측면이 많다.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

24일 주진우 김어준 씨 무죄 평결에 이어 이번 평결도 상식과 맞지 않는다는 말을 듣는 이유를 따져봐야 한다. 두 사건 모두 선거범죄다. 지역에 따라 정치 성향의 차이가 큰 한국에서 선거범죄에 참여재판을 적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그동안 참여재판 확대를 서둘러온 양승태 대법원장은 대법원 차원의 재발 방지책과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
#국민참여재판#안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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