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이상훈]동양에 ‘1조원 보증서’ 내준 정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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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경제부 기자
이상훈 경제부 기자
지난해 9월 동양그룹은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출입기자들에게 동양시멘트 강원 삼척공장을 견학하자는 제안을 했다. “한국 광물개발과 전력사업의 미래를 조명하고자 한다”고 동양그룹 측은 설명했다.

견학일정표는 이런 취지와 거리가 멀었다. 호텔에 묵으며 횟집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다음 날 동양레저의 골프장에서 골프를 친 뒤 관광을 하는 일정으로 채워져 있었다. 명백한 접대였다. 기자들은 거절했고, 견학은 취소됐다.

동양그룹이 ‘무리한 홍보’에 나선 배경에는 삼척 화력발전 사업이 있었다. 당시 동양그룹은 발전 사업권을 따는 데 역량을 집중했다. 시멘트 등 주력 사업이 부진에 빠졌던 동양그룹은 이 사업을 돌파구로 삼고 싶어 했다. 정부로부터 사업권을 따 발전소를 짓기만 하면 매년 1조5000억 원의 매출과 연간 영업이익률 20%를 거둘 수 있다고 봤다. 사업권 가치만 1조 원이 넘는다는 게 업계 관측이었다.

당시 동양그룹은 2022년까지 발전 사업에 11조 원을 투자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많은 이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지난해 9월 기준 그룹 지주사 ㈜동양의 차입금은 1조2500억 원. 대부분 단기 회사채와 기업어음(CP)으로 조달한 자금이었다. 그때도 동양 계열사들은 일주일이 멀다 하고 CP를 발행했다. 운영자금도 부족한 회사가 11조 원 규모의 국책사업을 맡는다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올 1월 삼성물산, 포스코 등을 제치고 동양그룹을 삼척 발전 사업자로 뽑았다. 동양에 행운이 돌아간 요인은 사업자 선정 방식. 당시 정부가 마련한 항목별 평가 배점을 보면 100점 만점에 재무능력은 3점에 불과했다. 지자체 의회 동의(15점), 용지 확보(10점), 환경 영향 평가(8점) 등에 비해 비중이 크게 낮았다. 동양그룹의 재무능력 점수는 2.14점으로 민간 사업자 13곳 중 12위에 그쳤다. 그런데도 총점은 80.98점으로 전체 2위였다. 동양그룹의 취약한 재무구조는 애당초 걸림돌이 아니었다.

업계 관계자는 “워낙 전망이 밝은 사업이라 누가 돼도 자금을 끌어오는 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정부가 판단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아무리 비전 있는 사업이라도 곧 쓰러질 회사가 맡으면 실패하기 마련이다. 하물며 대규모 국책사업이라면 사업자의 튼튼한 재무구조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주무 부처인 산업부는 이에 대해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사업자 선정 과정과 채점 결과 역시 지금까지 비공개에 부치고 있다.

동양그룹은 발전 사업권을 전면에 내세우고 “이런 사업을 하는 대기업이 망할 리 있겠느냐”며 개인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유동성 위기가 불거질 때마다 발전 사업을 방패 삼아 문제없다고 자신했다. 그 결과가 5만 명의 투자자가 총 2조 원이 넘는 돈을 잃을 위기로 나타났다. 정부는 부실기업에 ‘1조 원짜리 보증서’를 내줘 개인투자자들이 덤터기를 썼다는 비난을 들어도 할 말 없게 됐다.

이상훈 경제부 기자 january@donga.com
#동양그룹#사업권#자금#개인투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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