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적 포기로 병역 의무 저버린 고위 공직자 아들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10일 03시 00분


고위 공직자와 정부 산하기관 간부의 아들 16명이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병역 의무를 면제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안규백 의원(민주당)이 병무청 등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유민봉 대통령국정기획수석비서관, 신중돈 국무총리실 대변인, 신원섭 산림청장, 강태수 한국은행 부총재보 등 15명의 아들 16명이 미국과 캐나다 국적을 취득했다. 이 가운데 고위 공직자 아들은 7명이다. 해당 인사들은 아들의 국적 포기에 대해 “자녀의 의사를 존중한 것” “학비 등 교육 문제로 포기한 것”이라고 이유를 밝히고 있지만 병역 기피를 위한 의도임을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이들은 유학이나 이민 생활 중에 아이를 낳거나 자녀를 유학 보내면서 외국 국적을 얻었다. 그동안 현지 출산을 통해 미국 국적을 자동으로 얻은 뒤 병역 의무가 부과되는 시기에 즈음해 한국 국적을 포기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부유층 일각에서 나타나는 원정 출산도 마찬가지 목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지켜야 할 것을 많이 가진 사람들이 나라를 지키는 일은 남에게 미루는 행태다.

예나 지금이나 ‘노블레스 오블리주’(지도층 인사의 도덕적 책무)는 높은 지위와 부(富)를 누리는 사람이 지켜야 할 불문율이다. 국가와 사회의 혜택을 많이 받은 사람들이 나라를 위해 더 많이 봉사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고대 로마의 귀족들은 목숨을 걸고 전쟁터에 나가 싸우는 것을 명예롭게 생각했다. 병역 의무를 기피하면 고위 공직에 오를 수가 없었다. 영국의 경우 1, 2차 세계대전을 통해 명문가 자제들이 다니는 이튼칼리지의 졸업생 2000여 명이 전쟁터에서 숨졌다. 현 국왕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손자이자, 왕위 승계 서열 4위인 해리 왕자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아파치 헬기 조종사로서 탈레반에 맞서 싸웠다. 6·25전쟁 때는 아이젠하워 장군의 아들을 포함해 미국의 장성급 지휘관 아들 142명이 참전해 35명이 전사 실종 부상자로 남았다.

고위 공직자일수록 확고한 국가관을 갖고 자식의 병역 문제에서 모범을 보여야 한다. 그래야 국민의 안보관도 튼튼해진다. 불행하게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고위층 아들의 병역 문제는 공동체 통합을 해치는 고질병이자, 상대적 박탈감을 부추기는 뇌관이 되고 있다. 사회 지도층이 국가와 사회에 대한 의무를 항상 마음에 새기고 있어야 나라가 건강하다.
#고위 공직자#병역 의무#면제#국적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