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허진석]우주에서 날아온 응원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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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 국제부 차장
허진석 국제부 차장
한글날을 앞두고 재미 삼아 우리말 관련 퀴즈를 하나 만들어 봤다. “한국말의 대표적인 인사말인 ‘안녕하세요’를 들을 수 있는 한국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은 어디일까?”

한글을 수입했던 찌아찌아족이 살고 있는 인도네시아일까. 한반도의 지구 반대편인 아르헨티나일까.

정답은 더 먼 곳이다. 태양에서 약 190억 km 떨어진 곳을 운항 중인 우주선 보이저 1호 안이다. 190억 km는 초당 약 30만 km인 빛의 속도로 17시간 이상을 달려야 하는 거리다. 보이저 1호는 성간(항성과 항성 사이 암흑 공간)에 진입한 뒤 인류가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성간의 소리(플라스마 진동)’를 녹음했다. 이를 전송했을 때도 지구에서는 17시간이 지나서야 수신이 가능했다는 의미다.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우리를 실제로 품고 있는 우주를 의식하지 않고 산다. 우주에서 일어나는 일을 영화나 드라마 속 이야기로 여기기 일쑤다. 그러나 기억하시라. 우리말 ‘안녕하세요’가 인류가 지금까지 한 번도 탐험한 적이 없는 암흑의 우주 공간에 진출해 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올해 2월 러시아에 떨어진 유성은 지표면에서 불과 30∼50km를 남겨두고 폭발했다. 몇 초만 더 낙하했다면 히로시마 원자폭탄 20배의 위력을 목도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유성과의 충돌 같은 것은 없어!”라며 근거 없는 낙천적인 생각으로 살아가고 싶지만 미국 등 몇몇 국가에서는 충돌 위험이 있는 유성을 제거하는 실질적인 연구를 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런 ‘우주 소식’은 인간이 자연 속에서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지 돌아보게 한다. 보이저 1호가 먼 곳까지 갔지만 가장 가까운 이웃 항성까지 가려면 4만 년은 더 가야 한다. 우리 은하계(태양계)는 항성이 1000억 개나 있을 정도로 넓다. 게다가 우주는 그런 은하계가 1000억 개 모여 있을 정도로 광활하다.

시간적으론 또 어떤가. 우주는 약 137억 년 전 빅뱅으로 탄생했고, 약 45억 년 전에 태양계와 지구가 생겼으며, 약 38억 년 전에 지구에 생명체가 출현했다. 진화의 과정을 거쳐 탄생한 인류는 사실 대부분의 시간을 석기 시대로 보냈고, 인쇄기술 등에 힘입어 지식을 본격적으로 축적한 지는 겨우 600년에 불과하다. 이런 거대한 시·공간의 격자 속에 ‘오늘’과 ‘나 자신’이 있는 것이다.

어려운 경제 여건 때문에 어디에서도 기쁘고 좋은 소식을 듣기 힘든 시대다. 오늘도 직장에서 성과에 쫓겨 숨 한 번 크게 못 쉬는 당신, 생계를 위해 굴욕을 감수해야 하는 당신이라면 잠시 지구 위에서 일어나는 일에서 눈을 떼고 드높은 하늘을 보시라. 눈앞의 일에 너무 상심하고 가슴 아파하지 마시라. 인간 세상의 일을 티끌처럼 보이게 하는 보이저 1호를 생각하며 위안을 얻으시라. 지금 이 순간에도 보이저 1호는 캄캄한 암흑 공간을 홀로 날아가면서 당신을 응원할 것이다.

허진석 국제부 차장 jameshuh@donga.com
#한글날#우주#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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