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공공기관 ‘일자리 대물림’에 청년들은 좌절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5일 03시 00분


정부가 아무리 경기가 회복됐다고 한들, 어려운 대외 여건 속에서도 위기를 잘 헤쳐 나가고 있다고 한들, 당장 내 자식과 친인척이 취직을 못하고 집에서 논다면 정부의 주장은 공염불이다. 7급 공무원 시험 경쟁률이 107 대 1이나 되고, 삼성그룹 신입사원 공채시험에 10만 명이 몰릴 정도로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는 절박하고 소중하다.

33개 공공기관이 단체협약을 통해 가족채용 우선 조항을 두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이노근 의원(새누리당)이 179개 공공기관을 조사한 결과다. 아버지 세대와 달리 취업하기 어려운 나라에 살고 있는 젊은이들이 분노를 넘어 좌절감을 느낄 일이다.

일부 공공기관의 ‘고용세습’ 조항은 이해할 만하다. 갑자기 직원이 업무상 재해로 사망한 경우나 심한 장애를 입은 경우 회사 차원에서 배려를 하는 것까지 나무랄 수는 없다. 당장 가장(家長)이 일을 할 수 없어 생계를 꾸리기 어려울 정도라면 부인이나 자녀를 우선 고용해 이들을 보호하는 것을 비난하기 어렵다.

문제는 이런 경우가 아니라 정년까지 근무하고 퇴직했거나 업무가 아닌 일반 사망의 경우에도 해당 직원 가족을 우선 채용할 수 있도록 한 회사들이다. 충남대병원과 충북대병원, 강원랜드, 그랜드코리아레저가 이 경우다. 이들 4개사는 직원이 정년퇴직한 경우에도 가족을 우선 채용할 수 있도록 했다. 시설안전공단, 한국과학기술원, 지질자원연구원, 한국체육산업개발, 통일연구원,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천문연구원, 항공우주연구원 등 15개 공공기관은 업무상이 아닌 일반 사망 때도 가족을 우선채용 대상에 포함시켰다. 요즘 같은 취업빙하기에 부모가 그 직장에 근무했었다는 이유만으로 쉽게 그 직장에 들어간다면 누가 그걸 순순히 인정하겠는가.

일자리 대물림은 젊은이들의 취업경쟁을 가로막고 균등한 기회보장을 원천적으로 박탈한다는 측면에서 사회 정의에 어긋난다. 법원은 최근 현대자동차 소송에서 “일자리를 대물림하는 단체협약은 무효”라고 판결한 바 있다. 타인의 기회를 훔치는 일은 민간기업은 물론이고 공공기관에서는 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현대판 음서(蔭敍)제’는 공공기관이나 민간기업 할 것 없이 그대로 방치해선 안 된다.
#공공기관#가족채용 우선 조항#취업경쟁#청년실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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